◇광주, 또 다시 그날을 맞으며

  빛고을 광주! 15년전 봄, 군부독재의 종말로 찾아온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민주화 열망을 몸소 보이며 계엄군의 총칼에 장렬이 숨진 투사들의 고향! 그곳엔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지난 18, 망월동 묘역으로 가는 25-2번 버스안에는 하얀 국화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였다. 무엇인지 모르는 침묵이 흐르고, 창밖을 주시하는 사람들의 눈에 '5ㆍ18 성역화 사업'이란 입간판이 눈에 들어올때 쯤, 귀에 익은 조용한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반대편 공원묘지와는 대조적으로 5ㆍ18묘역에는 추모객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국화가 올려져있는 무덤앞에는 이미 빈 소주잔이며, 타고 있는 향들이 죽은이의 넋을 달래고 있었다. 특히 이철규, 박승희, 강경대 열사의 묘에는 종이학과 개량한복등 많은 물건들이 올려져 있어 그들의 죽음이, 남은이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추모객들 중에서 묘앞에 앉아 영정을 한나절이나 묵묵히 바라보다 돌아간 40대 아저씨가 있었다. 그가 지켜보다간 묘앞에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20대 여인이 사진속에서 웃고 있었다. '최미애. 당시나이 25세, 교사인 남편이 학생들이 데모를 한다며 나간뒤 돌아오지 않자, 집앞에서 기다리다가 게엄군의 총탄에 사망, 당시 임신 8개월중이었음' 이런 내용의 묘비뒤에는 '당신은 나의 천사였소,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라고 씌여 있었다. 그렇다. 무고하게 죽어간 사람들은 최씨뿐만이 아니다. 그 영혼들의 바램을 넘어서 역사마저 이 문제를 더이상 좌시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올해는 1980년에 광주사람들을 무참하게 살해한 범죄자들에 대한 공소시효 15년이 되는 해이다. 정부는 8월 16일이 지나면 법적으로 이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다. 이에대해 재야와 학생운동세력은 '학살자 전두환, 노태우등 책임자들의 처벌과 진상규명'을 주장하고 나섰으며 정부의 무성의와 축소화에 대해 강력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월18일 하루동안에는 우리학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학에서 5.18추모 집회를 가졌으며, 서울지역 3천여 대학생들이 정부의 원천봉쇄를 뚫고 5ㆍ18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습, 평화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이번 움직임들은 광주의 대대적 추모행사에 비할바가 못되었다. 이날 광주는 그야말로 숙연한 분위기속의 추모일이었다. 망월동에서는 오전 10시부터 '5ㆍ18민중항쟁 15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행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비오 신부는 기념식사에서 "누굴 용서하고 누굴 원망하겠는가? 그런문제가 아니다. 역사와 국민의 심판이 남아있을 뿐이다"라며 공소시효가 끝나기전에 반드시 학살자들을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같은날 1시경 전남대에서는 미술학과 학생들이 15년전 그날을 상징하는 행위예술이 있었다. 몸에 진흙을 바르고 서로 엉켜 뛰어 다니다가 붉은 십자가 위에 쓰러지는 사람들. 그냥 무심코 보기엔 무슨 의미일까 의문스러운 그 행위속에는 민중의 봉기와 그들의 외침, 그리고 죽음이 담겨 있다고 한다. 오후가 되자 광주 시내쪽에 교통체증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대학 3학년이었죠. 거리를 뛰어다니던 선후배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물론 그중 몇은 망월동에 누워 있습니다."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 금남로에서 열린 5월 정신계승및 광주학살 책임자 기소 촉구대회'에 참석한 김치수(42)씨의 말이다. 이 행사는 학생과 시민등 1만여명이 도청앞 분수대앞에 모인 가운데 펼쳐졌다. 행사에 앞서 대학생 20여명이 자전거뒤에 학살자 처벌을 촉구하는 깃발을 꼿고 시내행진을 하기도 했다. 금남로의 오후는 그렇게 저물어 갔다. 아스팔트위에 그려진 학살자들의 얼굴, 그 위를 밟고 지나는 시민들, 그것은 일종의 보복이었을지 모른다. 너무나 순박한 보복...
  현재 검찰에서는 5ㆍ18광주학살 책임자 처벌을 위한 조사가 진행중이다. 피터슨 목사의 헬기 기총소사등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는 지금, 당시 최고 책임자인 전두환 노태우씨가 법정에 서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그러나 우리는 검찰이 작년 10월29일 12ㆍ12군사반란자들을 기소유예처분했던 씁쓸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달리 생각해보면 이 문제도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의 심판에 맡기자"라는 무성의한 말처럼 얼렁뚱땅 마무리 될지도 모른다. 만약 이러한 결과로 5ㆍ18문제가 마무리 된다면 우리는 또 다시 이런의문을 제기하고 일어서게 될 것이다. "당신은 15년전 무고한 광주시민을 학살한 사람들과 손을 잡았다. 그리고 권좌에 올랐다. 그래서 그들을 처벌할수 없는 것이다."

 김재중 기자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