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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한 관객사랑, 흔들리는 동숭동연극계를 진단한다
문화 | 승인 1995.05.22 00:00|(745호)

  모두들 연극계가 불황이라고 한다. 연극인들과 비평가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고, 신문과 잡지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기실 동숭동에 나가보면 공연 시작전에 길게 늘어선 관람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정말 불황인가?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이 불황은 90년 연극의 해 이후 3, 4년간의 유례없는 호황을 겪은 이후의 썰렁함을 일컫는 것이지, 과거처럼 회당 서너명을 두고 공연했던 절대적 불황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우리 연극은 90년대에 접어들면서 과거 어느시기에도 경험하지 못한 색다른 경험을 했다. 공연장에 사람이 몰려들어 관객을 돌려보내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번에도 간혹 관객들이 몰리는 작품이 있기는 했지만 이 시기처럼 어려편의 공연들이 관객의 뜨거운 성원을 받기는 처음있는 일이었다. 91년 '리타길들이기'로 시작한 이러한 연극계의 호황은 92년 '딸에게 보내는 편지', '로젤', '당신의 침묵', '신의 아그네스', '불 좀 꺼주세요', '넌센스'등으로 이어졌고, 이 공연들은 최소 한달 이상씩 전석매진을 기록하는가 하면 일년 이상의 장기공연도 성황을 이루며 거뜬하게 소화해 냈다. 이로 인해 수천의 개런티를 챙긴 여배우가 생겨났고, 단 한편의 롱런으로 극장을 챙긴 극단도 생겨났다. 만성적인 관객기근으로 골머리를 썩던 연극인들에게 이러한 관객들의 호응은 참으로 기운나는 것이었다.
  물론 이 성원이 그냥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관객들의 관심을 끈 일련의 공연들은 과거 우리 연극의 주된 흐름이라 할 수 있는 것들과 확실히 달랐다. 즉 관객들의 호응은 연극계의 지형 변화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과거 연극계의 주된 경향은 관념적인 혹은 시대를 초월한 인류보편적인(?)주제를 형이상학적으로 다룬 것이거나 구미의 고전을 지식인의 교양과정인양 진지하게 다룬 것이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일련의 공연들은 부부관계, 결혼생활의 실패, 개그적 소재등 일상적으로 익숙한 문제들을 무겁지 않은 감각으로 다룬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공연들에 관객이 몰린다는 사실은 단지 고전이나 명작이라는 이름때문에 자신의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공연을 더 이상 보지 않겠다는 관객들의 자기 표명이며 선언이었다.
  80년대 후반을 보내고 그리고 소위 후기자본주의사회속에 사는 관객들은 자신의 삶이나 욕구와 무관한 작품을 거부하고 보고 싶은 작품, 봐서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요구했으며, 이를 관객동원으로 확인 시켜준 것이다. 관객들은 90년대 문화를 양적으로 질적으로 압도하고 있는 대중문화적 기대치를 연극에도 요구했다. 따라서 과거보다 부쩍 대중스타를 기용한 연극이 늘어났고, 개그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희극적 작품이 늘게 되었다. 그래도 한동안 라이브로 스타를 감상하고, 개그맨을 공개방송에서 만나는 기분으로, 나이트클럽의 찜찜함과는 다른 예술로서의 '벗기기'를 눈요기하는 맛에 연극계는 관객들로 들끓었다.
  요구는 만성적인 관중기근에 찌들어있던 연극인들은 가뭄에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앞다투어 관객들의 요구를 수용했고, 앞질러 나갔다. 뮤지컬이 번져나갔고, 배우들의 노출이 심해져갔고, 지명도가 있는 탤런트들의 무대나들이가 빈번해졌으며, 뜻도 없는 개그가 판을 쳤다. 과거의 엘리트주의적이거나 동호인적 실험적인 연극들이 무너지면서 사실주의 연극도 관객의 진지한 관심을 요구하는 연극도 무너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관객들이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텔레비젼 드라마를 각색하거나 스타들을 대거 동원한 뮤지컬들이 그나마 관객들기에 성공하고 있지만 1, 2년전의 호황에 비하면 시셋말로 잽이 되지 않는다. 관객들의 갑작스런 외면에 동숭동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기실 이러한 관객외면은 미리 예정되어진 것이었다. 도대체 연극이 뭔지에 대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몰려든 관객을 놓치기 아쉬워 그들 앞에 무조건 알아서 긴 얄팍한 관객사랑의 예정된 결과였던 것이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연극계는 90년대 들어 과거의 지식인 중심의 엘리트주의적 연극에서 일반 대중중심의 대중연극으로 그 지형이 변했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 대중문화적 감각을 가진 공연들에 적극적인 성원을 보내주었다. 고질적이던 관객기근을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맞아 많은 연극인들은 관객의 입맛을 붙들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관객을 위해서라면 대중문화처럼 철저하게 오락이 될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관객들은 연극인들의 온갖 재주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는다. 남은 것은 대중문화의 꽁무니에 위태롭게 발붙이고 있는 연극의 비참한 신세 뿐이다.
  연극이 대중적이 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대중들의 삶이나 예술적 욕구와는 무관하게 소수 동호인들과 인텔리들의 지적요구나 교양만을 주장하는 연극은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90년대들어 대중문화의 호황과 더불어 이루어진 연극계의 대중화바람은 기본적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연극은 '대중문화'가 될 수는 없다. 대중문화의 시대에 대중문화적 영향을 받는 것은 불가항력적이고 때론 바람직 하지만, 연극은 그 속성상 대량복제가 가능하고 나름의 상업적 유통경로를 가지는 대중문화는 아닌 것이다. 즉 대중문화적 비전은 연극적 비전으로는 부적합하다. 대신 연극은 대중의 생활감정과 활동공간에 기초를 두고 대중의 진정한 관심을 수렴해 낸 작품을 만들어 내고 대중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매체가 되어야 한다. 다시말해 대중문화가 그 속성상 할 수 없는 기능을 대중문화시대의 연극은 할 수 있고 또 해야한다. 그것만이 돌아선 관객들의 발길을 다시 돌리는 길이다.
  대중의 일상적 얘기거리를 찾아낸 것은 진정한 대중연극의 시작일 뿐이다. 연극의 빛나는 내일은 엘리트주의적 연극과 대중의 말초적 자극만을 노리는 상업적 연극이라는 두 극단적인 연극 풍토를 갈아업고, 대중의 건강한 관심사를 찾아내고 이를 사회적 비전으로 연결시켜내는 것에 있다. 연극계의 불황은 그로부터 타개될 것이다.

 박광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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