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구속의 새동네를 알아본다
 '주객전도'로 흐느적대는 대학촌

 충대 학생이라면 새동네를 지나다니면서 혹은 새동네에서 친구들과 놀면서 새 동네가 더이상 우리들의 휴식공간이 아닌 대전의 각광받는 신흥 유흥지가 되었다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관광특구가 아닌 학원특구로 보호받아야 함에서도 왜곡된 해석과 상인 이해 타산집단의 이익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지 의심스럽다.
 물론 얼마전 총학에서 집회를 가지고 유성구청도 방문하여 우리의 의견을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얼마전 서울의 여러 대학에서도 대학가 유해 환경에 항의하는 집회와 시위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나는 그것과 새동네 문제와 구별짓고자 한다. 그런 유해 환경들은 이미 들어서 있거나 예정되어 있어 상인들의 생존권과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해결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여기서 본인이 제기하는 문제는 그것과는 조금 동떨어진 관광특구 설치로 부터 기인되었다는 점에서 확실히 개선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급기관인 구청의 방문으로 정부차원에서 이루어진 법을 고치기란 복지부동하는 공무원 사회의 생리상 위로 의견이 전달되고 그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져 고치기란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의 의견이 진저으로 받아들여지고 관광특구란 미명아래 왜곡되어 버린 새동네의 24시간 영업의 잘못을 고치기 위해서는 정부부처 아니 청와대에 직접 우리의 의견이 전달되는 방법이 가장 빠르고 가능성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수단으로서 제시하고 싶은 것이 바로 서명운동이다.
 그 가까운 예로 고속전철 역사의 지하화를 들고 싶다. 이 고속전철 지하화가 가장 먼저 이루어진 곳이 대구이다.
 인구 3백만명중 1백만명이상이 참여한 서명운동으로 이런 뜻이 전달돼 가장 먼저 역사 지하화가 이루어졌고 대전등 여러 곳도 지하와가 이루어 진것으로 알고있다.
 얼마전 뉴스에서도 지적되었듯이 1백만명의 대구시민이 서명운동으로 지하화를 위해 노력했음에도 대전에서도 물론 여러 경로를 통해 노력했지만 범시민운동이 일어나지 못했다.
 주인의식이 미약했던 탓으로 생각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이야 말로 충대주인의식, 나아가 대전 시민으로서의 주인의식을 발휘할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충대인 모두가 서명한 새동네 24시간 영업조치철회의 뜻이야 말로 어떤 집회ㆍ요구보다도 강력하리라 생각한다.
 우리의 학원 공간은 우리가 지켜야 하고 우리가 일궈나가야 한다. 본인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이런 작은 생각이 꼭 실현되어 머지않아 유흥 관광지로 여러 타인들이 돈을 퍼붓는 주객이 전도된 거리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도종욱(토목공학교육ㆍ3)


 인간성 상실의 미학
 지난 5월23일 밤11시 30분경 정문부근에서 끔찍한 사건을 목격했다. 교내에서 빠져나가려는 차량들 20여대가 수위들의 '검문(차량번호와 인적사항을 적음)'때문에 지루한 행렬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급브레이크 소리, 클랙슨 소리, 고함소리가 동시에 들려 뒤돌아보니 차량앞에서 차량번호를 적던 수위가 그 차의 앞부분에 매달려 있었다. 잠시후 수위가 차량을 옆으로 대라고 해도 운전자는 그대로 버티고 있고, 옆좌석에 탔던 학생만 내려서 수위실에 가는데 무엇인가 따지는 듯 하고 쉽게 끝날것 같지 않은 분위기였다.
 도대체 아무리 짜증이 난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업무수행중인 아저씨벌 되는 사람을 차량으로 밀어버리려고 위협하려했을까? 정확한 상황을 모르니 백보양보하여 운전미숙자가 실수로 엑셀레이터를 밟았다고 가정하면, 왜 금방 내려서 다치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놀라시게 해서 죄송하다는 깊은 사과를 하지 않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도지 않는다. '차'라는 괴물을 타면 길에 서있는 인간은 사람같이 보이지 않않기 때문이지 아니면 수위라는 직책이 사회적으로 하찮아 보여서 그랬는지..
 문제의 심각성은 더 깊은데에 있다. 몇분이 지나도 수위실에서 학생의 큰소리와 항의가 계속되어서 수위실에 들어가 보았다. 운전을 한 학생은 공주대학교 휴학생이고 옆에 탄 사람은 우리학교 3학년 손모군이며 이들은 친형제간이었다. 조금전 생명의 위협은 위협을 받은 수위아저씨는 고발이나 훈계는 고사하고 마음씨 좋게도 두 사람의 인적사항만 적어놓고 상부에 보고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운전자의 형인 손군은 앞으로 자기에게 '불이익이 올런지 모르니 자신의 인적사항을 적은것을 찢어 가야겠다'고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내가 교수라고 신분을 밝히며 무슨과냐고 물어봐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반성은 커녕 철저한 보신주의에 물들어 있음을 통감할수 있었다.
 이러한 보신주의는 일반화된 것같다. 그즈음 수위실로 들어온 어떤 대학원생은 조금전 신문증때문에 교내에 즉시 들어갈수 없어 급한 실험을 체크하지 못하여 실험 결과가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러니 조금전 그러한 사정을 얘기 했는데도 불구하고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그 수위의 이름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다. 내일 교수님께 이를 말씀드려 책임을 회피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 대학원생에게 갑자기 피치못할 사정이 생겼는지 모른다. 그러나 야간 통제를 한다는 것을 이미 오래전에 알았는데 신분증을 지참하지 않았다거나, 아주 급하고 중요한 실험인데 30분이나 한시간전에 여유있게 실험실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해야하는 것도 생각해 봄직 하지 않은가? 꼭 초를 다투어 행동하고 책임회피의 구실을 찾는것이 바람직한지 모르겠다.
 인간성을 상실하고 보신주의에만 빠진 학생들에게 학문연마를 시키는 것은 사회의 기생충을 기르는것은 아닌지, 나 자신이 교주로서 이러한 부류의 학생이 또 다시 생겨나지 않도록 할 수 있는것이 무엇인지, 무력감과 회의에 빠지게 된다.

 임도빈(자행ㆍ부교수)


 ◇우리나라 오페라 현실
 절제 통한 '소리' 필요

 5월15일자 내용중 음악 평론가 탁계석씨의 '오페라 문턱 결코 높지만은 않다'라는 글에 대하여.
 오페라 발생에는 여러가지 아유가 있다. 탁계석씨의 글처럼 합창 양식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도 있었겠고 당시의 유행이었던 카스트라토가 기량을 발휘한 무대를 만들기 위함도 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틀리다. 오페라의 근원이라고 생각되는 '다프네와 아폴로'를 애초만든 목적은 고대 그리스 연극의 부활에 있었다. 이'다프네와 아폴로'는 글에 나온것처럼 '카메라타'라는 모임에서 바르디 백작이 주재자가 되어서 위의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에게 단순한 즐거움을 주기 위해 계획된 것이다. 대본은 오타비오 리누이치가 쓰고 작곡은 줄리오 카치니, 야코포페리등이 해서 준비중 주재자가 야코포 코르지로 바뀌어 초연은 1594년 코르지의 저택에서 하게 되었다. 처음 계획과는 달리 반응이 너무 좋아서 2번째 작품을 계획하기에 이르렀고, 프랑스 앙리 4세와 '메디치가(家)'의 마리아 공주와의 결혼축하곡으로 '에우리디체'가 1600년에 피렌체에서 초연되었고 최초의 오페라는 이 '에우리디체'로 보는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때만 해도, 성악이 폴리포니서법에 집중되어 있었으니, 성부의 긴밀한 상호관계때문에 '극이 가지는 활동성'엔 부적합하였다. 그래서 극중인물들 각자에게 멜로디를 주어 부르게 된 것이 서정적 독창곡이다. 그후 서정적 독창곡이 아리아와 레치타타보로 나뉘고, 다카포아리아의 도입으로 반복되는 곳에서 가수들은 '칸타르 알 멘테'라 하여 카덴짜나 째즈연주자들의 연주와 비슷한, 즉흥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수명이 짧은 한국의 가수들..
 내가 생각하는 우리나라 오페라의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많은 않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성악가는 그 수명이 상당히 짧다. 얼마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슈베르트 가곡의 밤'에 간적이 있었다. S대 출신의 성악가로 이루어진 이 음악회에서 나는 커다란 실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서 노래를 한 성악가들은 대부분 40대 후반, 많아야 50대초로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목소리가 하나 같이 힘이 없고, 성량 또한 작았다. 이미 발전이라고는 더이상 찾아볼 수 없고, 할아버지 소리만이 나왔다.
 우리도 이제는 소리를 소리로만 들을게 아니라 소리에 담겨있는 진정한 '소리'를 들어야 하겠다.
 커다란 성량이 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성량의 절제에서 나오는 진정한 목소리인것이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진정한 절제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조안 서덜랜드의 노래처럼

 서경철(물리ㆍ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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