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대문학상 수필부문 가작 - 봄이오면-

 나무마다 벗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무심코 지나쳤던 것이, 어느날은 태양빛에 반짝여 내 눈을 자극했기에, 잠시 멈춰서 신부의 하얀 드레스 보다도 아름다운 그 광경에 매혹될수 밖에 없었다. 작가 이효석이 달빛에 젖은 메밀꽃을 보고서 소금을 뿌려놓은듯 하다고 묘사했던 그 느낌에 조금이나마 동감할 수 있을듯 하다.
 동생이 급히 전화를 받고 있다.
 "야, 시간하고 장소 좀 다시 말해봐. 음, 3시20분에, ○○독서실 앞에서? 알았어, 끊자."
 그러고는 허둥지둥 난리다.
 "언니, 3시 정각에 버스 있지? 빨리 준비해야겠네. 아유 바뻐."
 그런 동생의 모습에서 느끼는 것은 새삼 깊었다. 몇일, 몇시, 몇분... 모두 갇혀진 시간의 틀이다. 이 답답한 한계속에선 어느 한곳 마음 열 곳이 없다. 우리의 생활속에는 이런 것들이 마치 짙은 안개처럼 넓게 깔려져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것들 속에서 숨쉬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도 수업에 늦을세라 자명종이 기대이고, 재깍재깍 시간을 맞추어 정해진 일상생활에 잘 익숙해져 있다. 발달하는 현대 생활에서는, 이런 모든 행위드이 필수적으로 작용해야 하는 것이건만, 새삼 그것을 역으로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새생명의 봄이 와서, 벌떼가 왕왕거리며 화들짝 피어버린 벗꽃과 개나리를 꼬집는 이 무렵이 되어 더욱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옛 선인들은 어떤 기약을 할 때, "우리 3년후 이맘때, 이 소나무 알에서 다시 만나세."
 라든가,
 "자네, 다음 해 이 보리이삭이 패기시작할 무렵, 그때 다시 보게나."
 하곤 하였단다. 이 얼마나 운치 있고 여유있는 삶들인가. 자연과의 삶을 벗하고, 안분지족을 능히 이룰수 있었던 우리의 조상들이었다. 그에 반한 우리 현대인 들의 삶은 어떤가 생각해 본다. 시간과 날짜와 물질에 얽매여 있는 우리들은, 너무나 가련한 생명체 들일수있다. 기나 긴 겨울밤,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호랑이 담배먹던 이야기가, 우주선이 달에 갔다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더 푸근하고 상쾌함을 느끼게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바쁘게 뛰어다니는 생활속에서도, 한번쯤은 고개를 들어 하늘의 솜털구름을 보고, 발밑에 조용히 피어있는 제비꽃을 꺾어 책장 사이에 꽃아도 보라. 우리의 머리와 가슴은 지금 순간에도 기계의 부속물로 모조리 물들고 있을지 모르니까...
 고등학교 시절 어느 봄 날, 작문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있다.
 "저기 앞산에 아카시아꽃이 활짝 펴서, 그 향기가 물씬 풍겨오면, 그때 작문 숙제를 내도록 해요."
 그 때는 아무 생각없이 들었던 말귀이지만, 지금은 가슴에 새겨오는 그 무엇으로 남겨진다. 그리고 그 때, 선생님의 눈이 맑게 반짝였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손정숙(신소재ㆍ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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