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 교육의 필요성과 방향

  1995년은 한국근대사법사(司法史)의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885년 근대적 법과양성소가 창설된 이래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고 정의감을 갖춘 법학도를 양성하고자 하였으나 조선말기의 혼란, 일제식 민법학의 지배, 6ㆍ25전쟁, 오랜 기간의 독재 등 왜곡된 한국근대사로 말미암아 법의 존엄성은 무너지고, 법치주의는 타락하였다. 힘의 논리를 정당화시켜주는 왜곡된 법기술자의 정권과의 결탁,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같은 황금만능의 법조풍토, 지나치게 높은 변호사 사무실의 문턱, 전관예우와 같은 타락된 법학도의 모습으로 인해 국민은 법을 불신하고 법위 권위는 실추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법학교육이 왜곡되는것은 당연한 것이다. 법과대학은 사회적 신분상승(권력과 부를 단시간에 한꺼번에 장악할 수 있는)의 수단인 고시를 위한 고시학원화되고 심지어는 법과대학원조차도 고시공부를 계속하기 위한 병역연기 장소로 전락되어 법학교육의 목적 자체가 상실되고 있다. 사법시험등 고시과목 이외의 과목은 설강이 불가능하며 폐쇄적인 사법시험제도로 인하여 법조인들도 국제화ㆍ전문화된 사회의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더우기 한국법제사는 기본교재마저 개발되지 못하고 있고, 법률 용어도 시민이 잘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있는 등 비민주적이고 국적없는 법학교육이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실질적 의미의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것은 세계화를 부르짖는 문민정부의 제1개혁과제라고 할 수 있으며 법학교육개혁의 첫째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인류는 유사이래 가장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회ㆍ경제구조도 고도 산업사회 내지는 정보화사회로 급변하고 있으며, 그 변화의 속도는 더 빨라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변화로 가족, 기업, 국가, 국제환경 등은 그 구조와 역할 면에서 전문화ㆍ다양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종래의 암기 위주의 법학교육에서 창의성 있는 법학교육에로의 전환이 요규된다.
  인공위성은 지구촌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는 큰 변화를 초래하였다. 1994년 WTO체제의 출범에 따라 법률분야에서도 국제적 협력강화가 요구되고 법의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국제무역, 국제거래, 다국적기업의 증가, 항공기및 선박사고, 국제적 환경오염등은 국제적 법률문제를 폭발적으로 발생시키고 있으며 이에대해 신속ㆍ정확한 해결이 요구되고 있다. 선진국들은 「세계화」의 대세를 업고 하나의 세계법치국가로 법질서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상사관계를 필두로 해서 제도와 법을 급속히 통일시켜갈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나라도 세계의 유수한 무역국으로서 이에 대응할 필요성이 크다. 더우기 1997년부터 개방되기 시작하는 교육시장개방에 대응하기 위하여 법학교육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더욱 커진다.
  앞으로의 법학교육은 민주화차원에서 실질적 법치주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저렴한 비용으로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바뀌어져야 할 것이다. 이와같이 민주적 법치국가의 이념을 달성할 수 있도록 법과대학은 시험위주의 고시학원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과 재산을 다루는 사명감있는 법학도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 세무대학이나 산업재산권대학원, 국제통상대학같은 임기 응변식 대응 방식은 효과적이지 못하고 결국에는 예산 낭비를 초래할 것이다. 아울러 한국법제사를 확립하여 국적있는 법학교육을 실현하여야 한다.
  전문화되고 다양화된 사회구조에 적응하기 위하여는 법학교육도 전문화ㆍ다양화 되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제간연구가 필요하며 학부에서 정치ㆍ경제ㆍ철학ㆍ역사ㆍ예술ㆍ과학ㆍ문학등을 전공한 학생들에게도 법학교육을 개방하는 대학원 수준의 법학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만 암기 위주의 법학교육에서 탈피하여 급변하는 사회질서에 적응할 수 있는 창의적 법학교육이 가능할 것이다.
  국제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 법과대학은 연구소 중심으로 학문적 깊이와 폭을 넢혀 나가야 한다. 인권ㆍ조세ㆍ여성ㆍ국제통상ㆍ범죄ㆍ가족ㆍ기업ㆍ지적소유권등의 영역은 물론이고, 아시아권, 유럽권, 영미권등의 비교법적 연구도 확대해 나가야 할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재정상 한계가 있는 일이므로 각 지방별로 특성화하여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지방화시대의 요청에도 맞는 일이다. 예컨데, 지적 소유권법 연구소 같은 것은 1997년 특허청이 이전되고 대덕연구단지와 공동연구할 수 있는 대전지역에 법과대학원을 설치하는 것 등이다.
  근대법학이 시작된지 100년, 그리고 광복후 50년을 맞은 금년에 법학교육과 사법제도의 개혁이 근본적으로 논의된 것은 만시지탄의 일이다. 그동안 일제의 법적 유산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장기간에 걸친 독재체제와 특히 유신법학에 그 원인이 있다 하겠다. 법학은 오랜동안 비바람에 시달려 꽃을 피우지 못하고 올곧은 법학자들은 숨도 크게 쉬지 못한 채로 거세되었던 반면, 사이비 법률기술자들은 권력과 결탁하여 힘의 논리를 정당화하는데 앞장서온 것도 사실이다. 이제 문민시대를 맞이하여 정신적으로 참된 법의 모습을 되찾아 국민을 위한 실질적 법치주의를 실현할 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도 국제적 무한경쟁 시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전문화ㆍ다양화ㆍ국제화하여 수준높은 법학교육을 이룩할 때이다.

 한복룡(사법ㆍ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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