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아침, 50년전 그날의 함성을 떠올리며 판문점으로 향했다. 연신내에서 경기도 고양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폭력경찰을 4차에 걸쳐 세워놓으며 우리의 통일열기를 가로 막았다. 아스팔트위에 누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갈길을 가게해 달라고 요구하는 우리에게 경찰은 앞이보이지 않을정도의 최루탄을 쏟아부었다. 엄청난 최루탄에 밀려 뒤로 나오고 있을때, 그속으로 뛰어들어가는 후배의 뒷모습이 보였다. 대전에서 검게 그을리고 야윈 얼굴로 나를 안스럽게하던 그 모습이···. 그후로 가야한다는 격정에 휩싸여 그들과 함께 뛰게 되었다. 경찰의 1차에서 4차에 이르는 방어선을 밀어내며 뛰고 또 뛰었다. 판문점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오직 한 곳 판문점을 향해, 그곳에 가면 우리의 동포들을 만날수 있다는 믿음으로 뛰었다. 이날의 판문점 투쟁은 전대협 6년, 한총련 3년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것이었다.
  16일 전, 노일당을 잡으로 연희동으로 향했지만 그들을 지키기 위한 현정권의 발악때문에 한양대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우리에게 날아온 소식은 허가되었던 학살자 처벌을 위한 장춘단공원 집회에 경찰이 침탈하였고, 학우들이 동국대에 피신해 있다는 것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한양대 앞에 나섰을 때, 우리앞에 페퍼포크를 앞세운 전경들이 버티고 서, 직격최루탄과 돌맹이를 날리기 시작했다. 속수 무책이었다. 우리를 죽이려고 저런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쓰러져가는 대원들, 비틀거리며 통진단을 부르는 아우성, 더 이상 최루연기 따위는 맵지도 따갑지도 않았다. 그저 인간이 인간에게 저렇게 가혹할 수 있구나라는 비애, 분노, 그리고 내가 가는 길에 대한 당당함, 이런 흐느낌으로 아스팔트위에 눈물을 떨구며 서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스쳐 지나갈때 내옆에 직격탄이 날아오는 섬뜻함이 있었고 한명이 쓰러졌다. 그걸로 끝이었다. 보름동안의 대행진단의 일정은 그것으로 마감되었다. 이렇다할 해단식도 없이 끝이었다. 뿔뿔이 제 갈길을 가고난 뒤 텅빈 한양대 교정에 앉았다. 그리고 최루탄 범벅이된 바지를 털고있었다. 그런데 바지에 큼지막한 붉은 꽃이 그려져 있지 않은가? 좀전에 내 옆에서 쓰러져 어느 병원 응급실에 누워있을 그의 피가 틀림없었다. 나를 감상주의자라 욕해도 좋다. 그러나, 판문점을 향해 뛰던 그 기억, 동지의 선혈로 그린 통일의 꽃, 이 두가지 기억 만큼은 술자리에서 안주거리로 떠들어 대기엔 조심스럽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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