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아리랑'을 읽고

  굴욕적이고 상스런 일본어가 판을 치던 일제 식민지 시대의 한민족의 삶!
  그러나, 빼앗기고 상처입고 죽었을 망정 우리 것에 대한, 바로 자유에 대한 조국의 독립쟁취의 애국적 삶을 살았던 때가 여기에 있다. 애초에 빼앗기지 말았다면 하는 바램도 가져보지만 시련이 있는 민족만이 강하게 살아남아 영원할 수 있다는 가치를 이 이야기는 전해준다. 그리고 현대의 '나는 나야'(나는 혼자일 수 밖에 없어)라는 사고방식을 고집하는 우리들에게 함께하는 삶, 공동체 속에서 고난을 극복해 가는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던진다.
  아리랑은 그 구슬픈 선율이 한국인의 생사(生死)속의 한의 정서를 표현했다고 한다. 전 12권, 4부로 구성된 아리랑의 배경은 20세기 전의 동학혁명 이후부터 일본 제국주의의 입김에 한반도가 흔들리기 시작한 때를 시작으로 45년 해방되는 때까지이다. 이야기의 전개는 국내에서 미국 하와이로, 일본, 만주, 상해, 동남아시아, 소련에 까지 이르는데 중심이 되는 것은 국내의 독립운동에 있으며, 다양한 등장인물의 개성과 시시때때로 가속화 되는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대한 거센 항일투쟁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은 기억하듯이 일제 식민지 시대는 지배계급간의 흥정에 의해 통치권을 확대시행한 경술국치로 시작된다. 일제는 광폭한 헌병경찰 제도를 구축함으로써 한민족에게 족쇄를 채웠으며, 식민지 노예교육의 주입으로 민족성을 말살시키려 했다. 식민지 경제정책은 식량과 공업원료의 약탈, 상품판매 시장, 그리고 자본투자시장으로서 이 식민지 재편성에 목표를 둔 것이었으며, 특히 토지조사사업은 토지 약탈과 지세 수탈을 강행함으로써 농민대중을 빈궁화시키고 농민을 토지로부터 축출시켰다.
  3.1운동 이후에 소위 '문화정치'의 미명 하에 신문 발간을 허용하는 등 유화책을 쓰는 듯 했으나, 실제로는 고등경찰제도의 실시, 지금의 국가보안법의 전신인 치안유지법의 강화를 통해 민족해방투쟁의 탄압을 더욱 강화했다.
  흔히 농민들은 소 소유자 의식을 가지고 있어 혁명적 의식이 없다는 원론적 분석이 없지 않지만, 3.1운동에의 열렬한 농민 대중의 투쟁은 그것을 실증적으로 부정하는 예이다. 더욱이 친일파를 제외한 모든 민중이 운동에 참여한 예는 일제 식민지 시대에서 3.1운동이 유일한 경우라 하겠다. 아리랑의 작가 조경래가 그려낸 인물들은 누구 나가다 식민지시대에 조국 해방투쟁에 나선다면 조연이 아니다. 동학혁명은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조선의 봉건성에 출구를 마련하고 격변기의 조선에 시대적 사고에 맞는 대안을 찾으려 했던 젊은 유학자 송수익은 급기야 의병장으로 나서, 국내에서 간도 만주에 이르는 항일 무장투쟁의 지도자로서 죽음의 순간까지도 조국 해방을 염원했던 사람이었다. 비록 송수익 만큼 강건하진 못하지만 손수 농사를 지으며 농민과 함께 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한 신세호, 속세를 떠난 몸으로 항일운동에 종횡무진했던 공허 스님, 농민이면서 노쇠를 어색스럽게 하는 독립투쟁 전사 지삼출과 남만석을 제1의 식민세대라 한다면 그의 자손 송중원과, 중원과 일본유학 동기인 허탁, 의열단으로 활동한 방영근, 명창 차옥비, 만석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식민지 조국에서 무산자 계급투쟁을 벌인 정도규는 제2세대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사회주의사상으로 무장하고 약소국연합독립투쟁을 벌인 공산주의자(불령선인) 윤철훈과 이강민, 40년대 일제의 악랄한 학병과 징용을 역으로 이용한 빨치산의 지도자 이현상을 책속이지만 살아있는 모습으로 만날 수 있었다.
  작가 조정래는 폭넓은 장소 전개로 실질성을 고집한다. 이것은 단순한 사실만이 아니라 민족분단 만큼이나 한민족을 갈가리 찢어놓은 일제의 잔재를 되짚는 작업이었고 또한 세계 각처에서 찾아낸 '조선족'의 근면성과 성실성 그리고 자주성을 객관적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글 속에 작가는 우리에게 민족적 긍지감과 자존심을 확인시키려 한다. 또한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고 일어난 사건 사고를 총체적 부정이라 한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의 역사적 발자취 속에 원인이 있음을 암시하며 분단 50년과 해방 50년인 1995년 지금까지 이 나라 이 땅에는 분단의 생산자와 통일의 걸림돌들이 복합적인 구조로 공생하고 있고, 한민족의 미래는 곧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이 만연시킨 사회적 병폐를 일소시키는 일이라 거침없이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 더 이상 일제의 주구들에게 또한 미제의 주구들에게 민족의 운명을 참견하게 하여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진정,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어느 시대 어는 역사를 막론하고 혼란의 시대나 위기의 시대에서 변절과 음모로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것보다는 설사 일신의 안락을 포기하는 일이 있더라도 정직하게 죽는편이 더 낫다는 것이다. 역사는 내 편이다.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거짓이 단 한마디도 필요하지 않으며 역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역사의 의지를 알 사람은 누구일까?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폭력을 뒤엎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피억압자 뿐이다. 식민지 상황에서도 패배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사람, 일체의 새로운 세계를 최후의 전투에서 얻기 위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뿐이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뿐, 그것은 3.1운동에서의 교훈처럼 민중처럼 계급관계를 유지하는 것. 왜냐하면 민중의 의지는 역사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식민지 조선의 민중의 의지는 단 하나다. 그것은 일제로부터의 해방이었고 지금으로선 완전한 통일조국을 건설하는 것이다. 분단된 조국에서 가치있는 청년의 삶으로 거듭나는 길은 청년의 기상을 가다듬는 호연지기에 있으며 이것을 민중의 의지에 대한 밑거름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박선례(정외ㆍ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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