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선배를 만나다 - 94학번 김재중 충대신문 선배와 04학번 손주영 후배

 자 “분량이 어느 정도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지면에 들어갈 분량부터 묻는 그는 과연 프로다. 그를 만난 것은 추운 저녁 한강 바로 옆의 벤치에서였다.
10월이 되고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의 찬 강바람 탓에 대책 없이 코가 빨개졌다. 캔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며 충대신문 44기 선배였던 ‘말’지 기자로 활동 중인 김재중 선배를 만났다.
 막 퇴근한 복장. 정장 재킷에 기자다운 청바지차림이 언밸런스한 것 같으면서도 썩 잘 어울렸다. 요즘 제작은 꼬박꼬박 하는지, 신문사 생활은 재밌는지, 관심과 염려가 섞인 말에 이어 “인터뷰할 때는 대상이 어떤 사람인지 빨리 파악해야 해!”라며 인터뷰 할 때는 어떤 태도로 해야 하는 지에서부터 질문안 짜는 방법까지, 인터뷰하러 온 후배에게 인터뷰 강의를 한참을 한다. 안주로 사 온 양념오징어를 씹으며 가만히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꽁꽁 숨어서 나올 것 같지 않은 물음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후배: 원래 기자가 되고 싶어서 대학 때 신문사 활동을 하신 거예요?
 선배: 대학신문이 기자가 되기 위한 관문으로 보는 건 잘못된 생각이야. 대학신문기자도 프로여야하고 대학신문도 하나의 매체여야 해. 물론 그때도 기자가 되고 싶긴 했지만 그것과 학보사활동과는 별개였지. 그 당시 나에게 신문사 활동은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지켜야 할 것이었어. 학점이 권총으로 도배되어도 말이지.
 후배: F학점이요? 기자가 되려면 학점이 좋아야 하지 않나요?
 선배: ‘말’이나 ‘한겨레’, ‘오마이뉴스’ 같은 일부 진보적 언론에서는 기자를 뽑을 때 면접과 필기에서 학점이나 토익이 몇 점이냐가 아닌 신자유주의에 대한 생각 같은 것들을 묻지. 이런 것들은 대학에서 고민 없이 단기간 공부해서 쉽게 답하기 힘들거든.

 토익 점수와 기자정신과의 연관성. 선배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것을 부인한다. 기자가 특권층이 된 것은 제 목소리를 내고 있지 못한 증거라며 이에 대한 안타까운 표정을 보인다. 사실 진보매체 기자의 월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며 선배는 농담 투로 물론 생활이 힘들 정도는 아니라고 덧붙인다. 
 
 후배: 기자 일이 바쁘진 않으세요?
 선배: ‘말’지는 월간지라 한번 나오면 일주일 정도는 널널해. 왠지 일간지는 겉만 훑고 지나가는 것 같아 체질상 안 맞더라. 한번 다룰 때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는 월간지가 나와 잘 맞는 것 같아. 기사 하나를 쓸 때 책 한 권을 쓴다는 각오로 쓰지.

 ‘기자로서 평생의 화두 한 가지 쯤은 가져야 한다’는 선배의 신조에서 범상치 않은 프로의 냄새가 났다. 직선적이면서도 상냥하고 세심한 말 한마디, 표정 하나. 선배는 굳이 명함을 보여주지 않아도 누구든지 척보면 ‘기자’라고 알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후배: 취재한 사건 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건 있나요?
 선배: 기억에 남는 사건이라면 1950년도에 일어난 전주형무소학살사건이 있지. 내가 취재하기 전에는 세상에 묻힌 사건이었어. 미국교포 한 명이 가져온 시체들이 즐비한 사진 한 장에 달랑 ‘1950년 전주’라고 쓰여 있는 것이 단서의 전부였어. 그것을 학살사건이라고 가정해 당시 교도관을 확보하고 노인들과 유가족을 통해 사건을 확인 한 다음 집단 매장장소에 땅을 파 보니 유골이 무더기로 나오더라. 스무 살도 안 된 아이들의 유골에서부터 노인까지 다양했지. 당시 증언을 씨실날실 엮어가듯 완성한 탐사 기사였어. 작년 여름쯤에 쓴 기사였는데 거의 모든 신문이 받아썼지. 그런 맛에 기자를 하는 거야.
 후배: 선배. 기자가 되려면 지금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요?
 선배: 우선 신문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 세상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하고 개방적인 자세에서 여러 시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해. 현실적으로 공부도 많이 해야 되지. 공부라고 해서 토익공부를 하라는 게 아니라 책을 많이 읽고 자기 논리를 갖는 공부를 하라는 거야. 또 정보를 해석하기 위해서 꼭 영어가 될 필요는 없지만 다른 나라 언어 하나쯤은 소화할 필요가 있어.

 요즘 뜨고 있는 중국어나 아직 많이 알지 못하는 제 3세계 언어를 배워보는 것은 어떠냐며 정보를 다루는 기자가 다른 나라의 언어 하나쯤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선배는 예순이 되어도 할 수 있는 한 평기자로 있고 싶단다. ‘어쩌면 이 사람은 뼛속부터 기자로 태어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의 말로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기자의 매력이자 숙명이라는데 그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그 숙명이 그대로 보이는 듯하다. 예순이 넘어서도 희끗한 머리에 어깨에 카메라를 메고 한 손에 수첩을 들고 꼿꼿이 기자의 숙명으로 살아가는 선배의 모습을 그려본다.
글 손주영수습기자 d-_-b@cnu.ac.kr
사진 오은교 수습기자 hoanh35@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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