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 충대人 Season2 - 최충식 동문(농학ㆍ64학번)

 지난해 여름 미국 서부지역을 방문해 동문들의 소식을 전했던 ‘세계속 충대人’. 올해는 10박 11일 일정으로 캐나다의 밴쿠버와 토론토를 방문해 그곳에 살고 있는 동문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완전히 새로운 환경 속에 적응하고 뿌리내리기까지,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그들의 삶. 지구 반대편에서 선배들이 전하는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자.

 34년간 CN철도에서 근무해온 최충식 동문은 이제 막 은퇴를 하고 여가를 즐기는 참이다. 나이아가라 폭포 위의 잔디밭에 앉아 그의 캐나다 이민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에서 살아가기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최 동문이 처음 목표로 했던 곳은 서울대 경영학과. 그러나 친구와 함께 고민한 끝에 우리학교 농학과를 지원하게 됐다. “친구가 ‘충남대가 좋으니까 거기에 함께 가자’ 해서 같이 지원했는데 친구는 실수해가지고 떨어지고 나는 농학과에 합격해서 혼자 다니게 됐죠”. 그 친구는 현재 서울시에서 행정자치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천휘 의원이다.
 당시 우리학교 농과대학은 농학과, 농산제조학과, 축산과, 농업토목과의 4개 학과로 이뤄져 있었다. 학과마다 학년 당 학생이 15~20명밖에 안 되는 조그만 학교생활. “지금도 가만히 누워있으면 친구들 기억이 난다”는 최 동문은 당시 학창생활을 “가족같았다”고 회상한다.
 졸업 후 최 동문은 ROTC로 군대에 입대했다. 소위 임관 후 6개월간 소대장을, 이후 중대 보급관, 연대 보급관으로 일한 최 동문은 “입대 후 2년 만에 ROTC 동기생들 중 제1호로 중위 계급을 얻었다”고.
 제대 후에는 교사로 일했다. 농학과에 있을 때 교직이수를 해서 농학 교원자격증을 이미 갖고 있었지만, 당시 농학을 하면 아무래도 시골로 발령이 날 것 같았고, 그때도 영어와 수학을 중시하는 분위기여서 수학을 다시 공부했다. 서울 교원양성소에서 자격증을 취득, 그런데 발령지는 강원도였다. 시골에 가지 않으려는 계획과는 반대인데, 이는 결국 교장선생님의 따님이었던 부인을 만난 계기가 되었으니 잘된 일일까.

 캐나다에서 살아가기
 최 동문은 결혼 후 부인과 함께 캐나다에 왔다. 한국에서도 교사를 준비할 때 “지방대학의 핸디캡을 경험한 바 있다”는 최 동문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처음엔 캐나다의 농과대학에서 공부를 다시 한 번 하려고 생각했다.
 “처음 여기에 오면 6개월간 정부에서 영어교육을 지원해줬어요. 그걸 끝내고 대학을 다니려 했는데, 영어 공부를 마칠 때 즈음, 당시 73년도 8월에 CN철도에서 직원 모집공고가 났습니다”. “영어를 잘 못해도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서 신청했는데 바로 채용됐다”는 최 동문은 그렇게 직업을 갖게 되자 새삼 공부를 하기가 애매해졌다고. CN철도에서 최 동문은 기차의 엔진 부분을 제외한 모든 곳을 수리하고 수리한 것을 몬트리올에 있는 헤드오피스에 보고하는 일을 했다.
 본업은 일선업무지만 최 동문은 관리직 업무를 권유받기도 했다. 하다가 “토요일이고 일요일이고 아무 때나 부려먹는 거라, 수입은 낫지만 원래 일보다 힘들어서 5개월 만에 그만뒀다”는 최 동문이다.
 그의 동기들은 자메이카, 인도, 필리핀, 미얀마 등 국적이 다양하다. 그 가운데서 대학을 나온 사람으로서의 자존심, ‘얘들에게 밀려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한 게 관리자들로부터 저 ‘친구는 다르다’는 인정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고.

 최 동문은 지난 7월 31일부로 일을 시작한지 34년 만에 은퇴를 맞이했다. 자녀들도 다 자랐겠다, 그동안 일한 만큼 여가와 함께 편안한 노후를 보내게 된 최 동문. 평범하다면 평범할 수 있는 한 이민자의 삶이지만 그의 삶에 대한 태도는 후배들에 좋은 모범이다.

 김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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