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농성중인 명동성당에 다녀와서

 한가위특집
  최대의 명절 한가위가 지나갔다. 우리가 풍성한 음식을 차려놓고 가족들과 명절을 즐겁게 보내고 있을때, 가족을 잃고 한해동안의 노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쓸쓸한 명절을 지냈다. 바로 명동성당에서 5.18농성을 하고있는 유가족들과 충남 서천군 수해농민들이었다.
  이들을 찾아 그들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냈다.

 -편집자주-

 글  :  김재중, 이제원 기자
 사진 :  김재중, 이제원 기자


  9월 3일 서울, 붉게 물들어 가는 하늘과 하나둘 불을 밝히는 네온사인이 명동거리에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그런데 일요일 저녁을 가득메운 활기찬 X세데들의 발걸음과 경쾌한 최신가요 속으로 분위기에 걸맞지 않는 상기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5월 광주문제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시민 여러분 학살자 처벌을 위한 서명운동에 동참해 주십시오"
  지난 7월 18일 5.18문제에 대한 검찰의 '공소권 없음'발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사람들은 역시 5월문제 관련단체회원들이었다. 직접적 피해 당사자인 이들은 7월 19일 곧바로 상경해 명동성당에 천막을 치고 두달째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두평 남짓한 천막안에서의 생활은 가족과 떨어진 외로움과 한여름의 무더위와의 전쟁이기도 했다.
  지난 3일 밤, 성당 첨탑위에 걸린 달과 제법 쌀쌀해진 날씨가 한가위를 예고하고 있을때 천막안에서는 명절 같은것은 포기한듯이 쓸쓸함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광주에서의 집회때문에 우리 다섯 빼고는 모두 광주로 내려갔재"라고 말하는 한 농성자의 변명아닌 변명은 이런 분위기를 애써 바꾸어 보려는 모습이었다. 어쨌든 낯선 지방학생들의 방문을 허물없이 반가와하는 그들은 우리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따스한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와 같은 평범한 모습이었다.
  그날 밤, 천막위에 이슬이 맺힐때까지 80년 당시를 회고하는 흐느낌과 현재의 투쟁을 이야기하는 자리에 끝까지한 사람이 있었다. "매복한 군인들이 총을 쏘는 바람에 내가 타고있던 트럭이 절벽밑으로 굴러 떨어져 모두 죽고 나만 살아 남았지"라고 말하는 박병률(40)씨의 그런 경험은 이후 15년의 세월을 오로지 5ㆍ18진상규명투쟁에 전념하게 했다고 한다.
  박씨가 힘주어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80년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싸울수밖에 없었던 깨달음(?)이란 것이 엿보였다. 80년, 항쟁이 진행될수록 늘어가는 주검들을 보며 민중의 실체를 알았다는 말, 끝까지 우리의 우방 미국이 도울거라 믿었다던 대다수 광주시민들의 순진함(?), 5ㆍ18단체들을 와해하려는 정권의 교묘한 보상정책,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자신들을 폭도라 여기는 우매한 사람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한다. "우린 본디 이렇게 오래 천막농성을 할 생각은 아니었재, 그런데 시민들의 호응이 이렇게 좋은데 어쩐다냐?" 싫지 않은 비명이었다. 그날밤은 그렇게 숨겨진 역사책을 꺼내읽듯 지나갔다. 무거워진 가슴과 눈꺼풀을 느끼며 천막안의 경사진 바닥에 몸을 눕혔다.
  고요했던 밤과는 달리 성당의 아침은 신도들의 분주한 발걸음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농성자들의 간단한 아침식사가 시작되었다. 농민회에서 보내온 쌀로 지은 밥과 매일 남산생수를 떠다주는 한학생의 수고가 있는 아침식사였다. 이 외에도 농성자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고자 정성의 손길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런 시민들의 자발적 호응은 아침식사후 진행된 서명운동에서 여실히 보였다. "특검제를 도입하여 학살자를 처벌합시다. 서명운동에 동참해 주십시오"시민들은 명동거리에 내걸린 5.18희생자들의 사체사진을 멍하니 지켜보고 서있다가 거의 대다수가 서명을 했다. 개중에 사진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는 시민이라도 있으면 농성자들은 목에 핏대를 세웠다. "이거 좀 보쇼, 여고생의 젓가슴을 도려내고, 임산부에게 총을 쏴댔어요. 그리고 이사람들 얼굴이 왜 이리 까만줄 아쇼? 그 놈들이 얼굴 못 알아보게 얼굴에 아스팔트 기름을 발라서 이런 거랑께"
  한번은 경찰이 시민들이 혐오스러워 한다면 사진전시를 가로막은 일이 있었는데, 오히려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우리가 시민인데 전혀 혐오스럽지 않소"라고 항변해 결국 사진전시를 계속한적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 검찰의 공소권없음 발표는 소위 제무덤을 판 격이 되고 말았다. 이미 서명운동은 명동에서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엄청난 호응속에 진행되고 있다. 민족민주진영은 하반기 역량을 5.18투쟁에 집중시키고 있다. 5월 학살자를 비호할 수 밖에 없는 현정권의 태생적 한계와 본질이 국민들에 의해 성토되고 있음이 수도 서울의 한복판 명동에서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명동의 가장높은 언덕위에 뾰족히 솓아있던 십자가와 그 아래 초라한 천막의 쓸쓸함이 말하는 상징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성당이 내려보는 명동, 성소가 내려보는 속세, 피해자가 내려보는 학살자, 그리고 진실이 내려보는 거짓이라는 의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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