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군 수해지역을 다녀와서

  9월 하고도 사흘밖에 지나지 않은 날이었지만 몸으로 느끼기는 가을의 한복판이었다. '서울-장항'이라 쓰여있는 기차칸에 몸을 싣고 TV화면에서 접한 수해지역을 떠올렸다. 물바다에 군데군데 보이는 전신주, 그리고 거북이등 같은 지붕들. 하지만 차창밖의 들녘은 언제 그랬냐는듯 말 그대로 누런 들판이었다. 기차에서 내렸을때는 들녘의 누릇함과 저녁노을의 불그레함이 어우러져 한가위를 재촉하는듯 보였다. 하지만 막상 발앞에 펼쳐진 들의 쓰러진 벼들과 찢겨진 비닐하우스의 모습은 수해의 섬뜩함이 남아있어 농민들이 풍성한 한가위를 맞이하기에는 힘겨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천군 농민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유용상씨댁에서 머물기로한 기자는 쉽사리 얘기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비는 별로 오지 않았는디 피해가 의외로 심혀, 그 놈의 고속도로공사인지 뭔지..."라는 유씨의 말투에는 이번 비피해에 대한 근심이 묻어나왔다. 속사정을 알고 보니 들판을 지나는 서해안고속도로 공사로 인해 그냥 넘어갈수 있었던 비피해가 큰 재해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것때문에 내일 아침부텀 일이 좀 있을겨."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다음날 우리는 머리를 맑게하는 아침공기를 맞으며 도로건설현장으로 향했다. 넓은 들녘에 시원스레 뻗은 고속도로건설 현장에는 10여명의 농민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시위라고 들었지만 트랙터 2대, 경운기 3대를 세워놓고 공사진행을 중지시키는 것이 시위의 전부였다. 하지만 무표정한 농사꾼들의 얼굴에서 사태의 심각함을 읽을 수 있었다. 들판 가운데는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조그만 수로가 지나가고 수로를 가로질러 고속도로가 시원스레 뻗어 있었다. 고속도로만 볼 때 국토의 발전이 실감났지만, 공사현장 옆의 널부러진 누릇한 벼들을 볼때는 고속도로가 수로의 물길을 막는 '둑'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게해 주었다. 수로를 가로지른 도로밑에는 큼직한 배수관 3개가 묻혀 있었지만 폭우에는 그야말로 이름뿐인 배수관이었다고 농민들은 입을 모았다.
  침수피해와 관련해 시위에 참여한 농민들의 요구는 당연한 것이었다. "이 들판을 지나가는 고속도로를 교량을 세워 물흐름을 원활하게 해주고 잘못된 공사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피해보상을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농민들의 요구가 거창한듯 들리지만 그들에게는 생존권을 담보로 하는 지극히 기본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농민들의 목소리에 대한 당국의 반응은 책임회피식의 김빠진 대답이었다. "교량건설은 지반이 뻘인 연약지반이라서 불가능하다. 배수가 원활하도록 충분한 검토를 하겠다. 그러나 보상문제는 시공회사와 얘기하라."는 한국도로공사 서천-군산 구간의 주감독관 박근용씨의 답변은 깝깝하기만한 농민들의 마음을 풀기에는 부족했다. 농민들은 답답한 마음을 안고 이번에는 시공회사측에 가서 답변을 요구했다. "논이 침수된 원인이 고속도로 때문이라는 것을 모두 인정할 수 없다. 때문에 피해보상은 극히 일부분이 될것이다."라고 말해 시공회사측에 걸었던 농민들의 조그만 희망조차도 저버리는 발뺌식 답변의 되풀이었다. 서늘한 아침 기운만큼이나 냉담한 해명들 뿐이었다.
  이 땅의 터주대감격인 농민들이 정부에서건 시공회사에서건 찬밥(?)신세라는 현실을 인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하루였다. 농산물 수입개방, 쌀 수입개방, 더욱이 천재가 아닌 인재에 대해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조국농업의 현실은 한가위를 앞둔 농민들의 마음을 저리게했다.
  시위현장을 뒤로 하려는 순간 현장에 계시던 아버지뻘의 농민 한분이 소주 한 잔을 권하며 하신 몇마디가 생각난다. "농사가 이렇게 생겨먹었어두, 재해보상법하나 없어두 왜 농사짓는 줄 알기나 허나. 내가 무식헌께 자식들 가르쳐서 내 대신하려는겨. 학생들 같은 자식들 키워서 설움 면해 보려구말여..." 농민들이 언제까지나 배운 자식들에게 의지하여 여러운 농업현실을 이겨나갈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는 정부측에서 먼저 재해보상법등의 현실적인 법적근거를 마련하여 농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쓰러진 벼들을 일으켜 세우는 농민의 마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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