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에 얽힌 사연

 삐삐 노이로제
  "너 혹시 삐비노이로제라는거 아니?" 삐삐를 며칠후에 사게 되었다고 말하자 친구 녀석이 물어오는 것이었다.
  "그 병은 3단계로 증상이 발전된데. 첫번째 증상은, 삐삐를 시도때도 없이 쳐다보며 친구들에게 배신감이 드는것이고, 두번째 증상은, '내가 대인관계가 이렇게 안 좋았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회의에 빠져들고, 마지막 증상으로, 다시 삐삐를 반납하거나 팔아버린다는데. 요즘 이 신종병이 유행하다니까 너도 몸 조심하는게 좋을껄"
  처음엔 삐삐가 너무도 많이 보급되니까 생긴 우스개소리인줄 알았다. 하지만 삐삐가 하루종일 자는 수가 늘어남에 따라, 삐삐의 존재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고, 나름대로 고도로 발전된 물질 문명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권력의 단맛을 보고 있는 소수만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체 '소외'라는 공동의 적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다. 그 탈출구가 바로 삐삐인 것 같다.
  삐삐가 울리고, 삐삐를 쳐 줌으로써 서로의 존재가치를 확인하고, 소외라는 공통분모를 극복하려는 게 아닐까-생각해본다.
  지나친 궤변이라면, 삐삐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무엇인가?

 차형구(경영ㆍ1)
 
 뱁새의 자유선언
  어느새 신세대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삐삐.
  처음 삐삐를 산 친구들이 조금만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도 호출번호를 가르쳐주며 호들갑을 떠는 모습에 곱지 않은 시선을 던졌다. 그러면서도 호출음이 울리면 쪼르르 공중전화 앞으로 달려가는 친구들이 왜 그리 부럽던지··· 나만 꼭 문명사회 속에서 소외되버린 것같은 생각마저 드는 순간이었다.
  고민끝에 아르바이트를 하여 삐삐를 사기로 굳게 결심한 나는 어렵게 돈을 모았고, 심지어는 삐삐의 디자인 선택에도 며칠씩 걸리는 등 많은 신경을 썼다.
  처음 삐삐를 허리 옆에 끼고 다닌나는 대단한 무기(?)라도 갖은듯이 우쭐한 마음이 들 뿐만 아니라, 어쩌다 호출음이 울리면 가슴까지 콩콩뛰고 당혹스러움에 어쩔줄을 몰랐다.
  그러나, 삐삐를 구입한 지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이제는 아예 삐삐를 부재설정 해놓을 때도 있다. 어디를 가던지 나를 족쇄처럼 따라다니는 삐삐의 호출음에 짜증에 난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이상적 물건이 나에게 이런 배신감을 줄줄이야!
  나는 역시 문명인이기 보다는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편한 사람인가 보다.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다가 가랭이가 찢어진다더니 내가 꼭 그 꼴이 된듯 싶다.

 김혜영(중문ㆍ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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