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산업 큰 출혈, 정부 방안 마련 시급

  한국은 미국의 시장개방압력에 또 다시 무릎을 꿇었다. 쌀 및 기초농산물 수입개방으로 민족의 곶간을 열어준데 이어 쇠고기, 담배··· 이제 우리나라 주력 산업인 자동차 산업에까지 빗장을 풀고 말았다.
  워싱턴에서 8일간이나 밀고 당긴 한-미 자동차 협상의 결과는 그야말로 주권국가로서는 있을 수 없는 굴욕적 양보 그 자체이다. 미국은 우리나라 자동차세의 누진율을 철폐하라고 압력을 가해 중대형 자동차 2,500cc 이상은 410원에서 310원으로, 3,000cc이상은 630원에서 370원으로 내리게 하였다. 특별소비세도 2,000cc 초과시 20%로 인하하는 등 남의 나라의 조세제도를 바꾸라는 식민주의적 내정간섭을 서슴치 않았다. 또 자국의 자동차 판매에 유리하도록 하기 위해 형식 승인을 간소화하고, 할부금융회사 설립시 외자지분제한을 97년까지 폐지하며, 당장 10월부터 방송광고 제한을 완화하기로 했다. 한국정부는 이렇듯 미국이 요구한 모든 문제를 다 들어준 것이다. 그동안 막대한 무역적자 상태에서도 미국의 압력에 따라 자동차 관세를 유럽의 10%보다 적은 8%로 낮춘 바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대미 의존적 수출주도의 경제구조가 갖는 약점을 악용하여 자국의 통상법 슈퍼301조의 우선협상대상국 지정을 무기로 또 다시 협박과 강압으로 자기들의 요구를 모두 관철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중대형차 시장에서 소형차시장까지 하나를 양보하면 열을 달라하는 것이 강대국의 제국주의적 본성이 아니었던가.
  이번 자동차 협상의 굴욕적 타결로 인해 96년 미제 자동차의 수입이 2배로 늘고 향후 8년 이내에 시장점유율이 무려 7배 이상 늘어난다고 한다. 요즘 서울 강남에서나 볼 수 있는 외제차가 몇년내 길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되면 국내 자동차 소비구조도 소형차 중심에서 중대형차로 바뀌고, 이 중대형차를 놓고 미국, 독일, 일본 등 외국과 국내 자동차업체간의 사생결단의 시장쟁탈전이 벌어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국내 자동차산업은 엄청난 출혈을 할 수 밖에 없고 그 부담은 나라경제와 국민과 노동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현대, 대우, 기아, 쌍용, 아시아 등 국내 자동차완성조립업체들은 자동차시장 개발이라는 위급상황을 맞아 그동안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중소 하청부품업체에 대한 납품단가 인하, 대금결제지연 등의 불공정거래를 더욱 노골화할 것이다.
  또 그들은 하청업체의 수를 줄이고 경영지도라는 이름아래 '무쟁의 각서'를 강요하는 등의 합리화 조치를 단행할 것이다. 부품단가 인하는 중소부품업체 노동자들의 저임금으로 귀결되고 하청업체의 폐업은 심각한 고용문제를 야기하며 노조탄압과 '한마음 운동' 등의 기업문화 전략으로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게 될 것이다. 자동차 대기업도 사정은 결코 유리하지 않다. 요즘 물밀듯이 파고드는 신경영전략이란 이름의 자본의 합리화 조치는 더욱 기승을 부려 원가절감을 위한 노동강도 강화, 임금 삭감, 복지후생의 후퇴가 가중될 것이다. 자동차산업의 판매회사 노동자들도 '외제차와의 판매경쟁에서 이기자'라는 층의 요구에 따라 또 얼마나 시달려야 하는가. "세일즈맨의 죽음"은 가상의 소설이 아니라 피나는 눈물의 현실이 되고 말 것이다. 이번에도 정부관리들은 슈퍼301조에 얻어맞지 않아 다행인 냥 한-미 통상마찰을 피한 것이 큰 성과라 하고 있다. 언론도 양국이 조금씩 양보하여 협상을 무난히 마무리 지었다고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이고 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아직 자동차시장 개방은 끝나지 않았다. 협상은 타결되었지만 그 이행을 위한 실무협의는 계속될 것이다. 세제구조를 바꾸는데도 국내 절차가 남아있다. 그리고 더 이상의 굴욕적 양보를 한사코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적정한 임금보장, 근로조건 개선, 복지, 노동법 개정, 경제민주화등을 통해 노동자의 근로의욕을 높이고 기술개발, 품질 향상, 소비자 서비스 개선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야 할 것이다.

 

 정성희<전국자동차노동조합총연합 준비위원회 정책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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