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 충대人 Season2 - 유병옥 동문(국문과ㆍ54년졸)

 지난해 여름 미국 서부지역을 방문해 동문들의 소식을 전했던 ‘세계속 충대人’. 올해는 10박 11일 일정으로 캐나다의 밴쿠버와 토론토를 방문해 그곳에 살고 있는 동문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완전히 새로운 환경 속에 적응하고 뿌리내리기까지,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그들의 삶. 지구 반대편에서 선배들이 전하는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국 시각으로 지난 7월 20일 새벽 5시, 지구 반대편에서는 작지만 의미 있는 모임이 열리고 있었다. ‘재 밴쿠버 충남대 동문회’의 첫 공식 모임. 한자리에 모인 선배 동문들과 후배 기자들은 학교를 다닌 시대는 서로 다르지만 각자의 학창시절을 이야기하며 뜻 깊은 시간을 보냈다. 자리에 함께한 유병옥 동문은 충남대학교 1회 졸업생이다. 연세에도 불구하고 현재 시인으로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인자한 외모에 흰 수염을 기르고 있어, 친절한 옆집 할아버지와도 같은 인상을 준다.

 

“당시 학교생활은 어땠나요”
 “한창 한국전쟁이 진행 중이다보니 학교를 다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어. 임시 수도를 부산으로 옮겼을 때 부산이 너무 복잡하니까 전시연합대학이라는 게 대전에 설립됐지. 그게 우리학교인데 학적을 둔 모든 대학생들은 전시연합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었어. 그때 충남대학교에는 문리대(문과와 이과) 밖에 없었는데, 여기에 해당되는 학생들은 연대, 고대, 숙대, 이대, 서울대 다 상관없지.”
 2000년대의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는 기자에게는 꽤 신기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학교가 혼란의 도가니였던 것은 아니었다. 성실하게 수업 듣고, 공부 열심히 해야 졸업했다는 이야기는 지금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이민와서는 어떻게 생활하셨나요?”
 학교를 졸업한 후 대전과 서울에서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일하던 유 동문은 75년도에 이민을 결정했다. 유 동문은 당시의 캐나다 이민에 대해 “허가 기준은 오고 싶은 사람은 오라 하는데, 아무도 간다는 사람은 없었던 때”라고 설명했다.
 처음 캐나다에 와서는 특별히 직장을 잡으려는 의지가 없었다. 처음 1년 반쯤은 놀고 있었는데, 하루는 초등학교 2학년 아들아이가 걱정이 됐는지 말을 걸더란다.
 “우리집 통장이 2개가 있는데, 하나는 돈을 막 넣고 찾는 통장이고, 하나는 목돈을 보관해두는 통장이야. 이 두 개를 들고 나에게 와서, ‘아빠 이거 봐. 여기서는 계속 쓰는 데, 이 돈이 자꾸 줄고 있거든? 이게 다 없어지면 우리는 어떻게 살지?’라는 거야.”
 아이 덕분에 마음을 먹고 아는 사람을 통해서 건물 에어컨 시스템을 만드는 공장에 취직했다.
 “그렇게 일을 했는데, 그 회사들이 이쪽 지역은 노조 싸움이 심하니까 앨버타 주로 이사를 간 거야. 직원 중 한국 사람이 3명 있었는데 그 세 사람을 다 데리고 가고 싶어하는 거라. 워낙 열심히들 일을 하니까.
 어떤 식이냐면, ‘이 쇠를 이만한 길이로 2천개 잘라라’ 하면, 2천개 자르는 데 공장 주인이 생각할 때는, 사무장이 생각할 때는 ‘2시간 걸릴 거다’ 하고 생각을 하거든. 근데 한국 사람은 1시간 30분 정도면 돼. 그러니까 굉장히 유익한 노동자야, 우리가. 그래서 데리고 가려고 하는데 안가고, 결국은 여기서 슈퍼마켓을 운영하게 됐지.”

 “그럼 시는 언제부터 쓰셨나요?”
 “1982년 밴쿠버 조선일보라는 신문이 생겼어. 신문이 생겨나니까 지면이 생겼고, 지면이 생기니까 우리가 쓰는 글을 신문사에서 아주 반가워해줬지.
 슈퍼마켓에 항상 손님이 있는 건 아니거든? 손님이 없는 시간에 예를 들어, ‘접시’를 보면 접시에 생각을 담는 거지.
 ‘아 빈 접시다. 우리는 다 놓고 온 빈 접시의 삶을 이 땅에서 시작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쓰면 교포들이 볼 때는, ‘그렇지~’ 하며 공감을 해. 빈 접시에 날 동일시하니까 내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그 이미지가 읽어보는 사람들의 자기 모습과 같으니까. ‘잘 봤다’, ‘다른 글도 써 달라’ 전화도 많이 오고 그러지.”
 반응이 있다 보니 슈퍼마켓을 그만둔 뒤 여기저기에서 문학 강좌를 요청받기도 하고, 그래서 여기저기 문학 관련 동우회나 단체에 강의를 다니고 있다. 은퇴 후 오히려 더 바쁜 유 동문이다.

 “자신만의 독서법이 있다면?”
 “제일 마음에 드는 책을 한두 권 내지 세 권 골라서 첫 페이지 첫 글자부터 끝 페이지 인사말까지 다 옮겨 적어. 책 한권 옮겨 적는 데 한 달이 걸려도 책 쓰는 심정으로 다 옮겨 적어. 한 달 걸려서 한 권, 또 한 달 걸려서 또 한 권, 그러다 보면 내 할 말이 생기는 거야. 그렇게 했는데 할 말이 없다면, 그건 말이 안 되지. 그렇게 하니까 내가 할 말이 생기는 거고, 할 말이 있으니까 그중에 들을 말도 있어. 들을 말이 있으니까 사람들도 계속 들으려 하는 거고. 그러니까 강의도 계속 하고 있는 거지.”
 “책 한 권 읽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텐데요?”
 “당연히 10번은 읽은 책을 1번 옮겨 적는 거지. 10번 읽고도 안 되니까옮겨 적는 거야. 책이 진짜 스승이야. 책이 한 30권 있으면 한 권 정도는 진짜 스승이 있어. 전부는 아냐.  쓸데없는 책들도 많아. 그래도 한 권이라도 써봐. 그러면 그렇게 노력하면, 노력한 다음에는 굉장히 나아질 수 있지.”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하실 말씀은?”
 “옛날 중국에서 제자가 사마광에게 묻기를 ‘한자 4만자 중 어떤 글자가 가장 훌륭한 글자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말씀 언(言)에 이룰 성(成), 정성 성(誠) 자가 최고의 글자’라고 답했다고 해. 자기의 삶에 최고의 정성을 기울일 때 최고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

 김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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