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을 위해 신혼의 단꿈은 접어두었습니다"

  "지난 해 11월, 민주노총이 건설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되지 않는 힘이나마 노동자들을 위해 써 주십사하고 부탁을 했죠. 다행히 일하게 해주셔서 하고 있던 조그만 구멍가게를 그만두고지금은 민주노총건설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약 한달 후 노동자들에게는 단결의 구심점이 될 민주노총 준비위(이하 민주노총) 대전지부 조직국장을 맡고 있는 박종범씨는 한달앞으로 다가온 민주노총건설 때문에 몹시 분주해 보였다.
  87년 7월의 노동자 대투쟁때부터 지금껏 한결같이 노동운동과 뜻을 같이 해왔다는 박씨는 결코 순탄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이는 두 번의 옥살이를 했다는 말에서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민주노총건설은 87년 7월부터 이어져 내려온 노동운동의 총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 단위 기업의 기업별 노조를 산별노조로 결성하는 것이 그 첫번째 의미라 할 수 있죠."라며 민주노총건설 의미를 간략히 밝혔다. 이제 노동운동이 대중을 기반으로 할 때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우리나라의 노동운동도 이와같이 변해간다며 지금의 노동운동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현재 서른 두살인 박씨는 두달전에 결혼해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다. "신혼여행간 첫날에도 집에 못 들어가고 9시에 출근하면 밤 12시에나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나마 일주일에 2~3일은 집에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아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며 구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라며 신혼의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제 한 가정의 가장임에도 뚜렷한 생계가 없는 박씨는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80년대의 혼란한 사회속에서의 대학생활이 자신에게 노동자의 삶을 살게 한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는 박씨는 이러한 생각들 때문에 예전에 일했던 직장에서 해고되었을 때도 후회는 없었다고 말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와서인지 음식은 가리지 않는다며 특히 요즘은 아내가 차려주는 아침상에 즐거움을 나타냈다.
  전태일을 최고 노동자의 상으로 여긴다는 박씨는 자식 이름도 '태일'로 지을 생각이라며 노동자로써의 삶을 잊지 않고 있었다. "80년대의 변혁적 정신들이 묻혀지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때 뜻을 같이하던 사람들이 어떤 이들은 노동자로, 어떤 이들은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관리자로 남아있는 현실이 아쉽습니다."라며 현재의 아쉬움을 이야기 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들의 뜻이 모아져 오는 11월 민주노총이 발족된다. 민주노총의 발족이 노동자들에게 힘찬 삶을 함께 할 수 있는 바탕이 됨과 동시에 대중들과 노동자들이 하나임을 나타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바란다.

 

이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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