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제, 본래취지 퇴색

  서울대를 비롯하여 학부제를 도입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우리학교도 지난달 20일경 학과 통폐합 안을 내놓았다. 정부의 세계화 정책에 발맞추어 대학도 경쟁력 강화가 불가피하다는 이유 때문에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제기되었던 학과 통폐합 문제가 지금까지 난항을 겪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학교도 지난 5일 공과대 7개 학과의 3개 학부(금속공+재료공→재료공학부, 화학공+고분자공+정밀공업화학→화학공학부, 기계공+기계설계공→기계공학부), 법과대의 2개 학과가 1개 학부(공법+사법→법학부)로 학과 통합이 결정ㆍ통과되었다. 그렇다면 우리학교에서도 난항이 계속된 학부제의 장ㆍ단점을 알아보자.
  장점으로 첫째,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수강과목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전공 선택시 융통성과 폭 또한 넓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세분화된 학과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학과를 선택하는 현행 대학 입시제도의 문제점을 학부제를 통해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교수의 입장에서는 학부내에서 교수간의 선의의 경쟁을 통한 질 좋은 교육이나 협력을 통한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활성화 할 수 있고, 셋째, 대학 당국은 학교 운영시 효율적인 운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사 학과의 통합을 통해 학사관리나 교무행정 등에 있어서 이중적인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단점으로는 학부제는 대학의 대학원화를 만드는 것으로 우리나라 모든 대학에는 적용할 수 없다. 정부에서는 '대학원 중점 육성 지원대학 선정계획' 아래 학사과정의 학과를 통합하여 포괄적인 교과과정을 운영하는 대학만이 대학원 대학이 될 수 있다는 전제로 현재의 대학에 학부제를 실시하려는 것이다.
  또 학과통합은 학문분야의 독자성, 특수성을 저해할 수 있다. 각 과마다의 특수한 전공 커리큘럼이 있고 다른 면이 있는데도 비슷한 점만을 들어 하나로 묶는다는 것은 학사교육 과정상 가장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예로 이번에 학과통합이 된 기계공학부 류정인(기계공ㆍ교수) 교수는 "현재 각 과마다의 전공 커리큘럼이 있는 상황에서 내년 신입생부터 시행되는 기계공학부에 대해서는 새로운 커리큘럼이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라며 걱정을 표명했다. 또한 작년에 결정되어 실행된 우리학교 신소재공학계열 즉, 6개 학과(재료공+화학공+금속공+정밀공업화학+섬유공+고분자공)의 1개 학부가 올해에 들어와서는 많은 변화와 문제점을 들어냈다. 각 학과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묶었던 신소재공학계열을 1년 밖에 안된 상황에서 1개의 학부가 2개의 학부(재료공학부, 화학공학부), 2개의 학과(섬유공, 고분자공)로 나뉜 것을 보면 학부제라는 것이 그리 쉽게 결정될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단점으로 우려했던 일이 여실히 드러난 경우였다. 그리고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과 공동체의 붕괴로 선후배, 동문간의 문제가 야기되고, 학생회 사업이나 학회 사업에 혼선을 빚을 수 밖에 없다. 우리학교 신소재공학계열 같은 경우는 3백 18명이나 되는 1학년에게는 과사무실도 6개 학과의 과사무실에서 임시로 맡고 있는 실정이다.
  이재혁(재료공ㆍ2)군은 "지금 95학번부터 신소재로 통합되었는데 후배들과 선배들의 관계가 멀게만 느껴진다"라며 "과 행사에 1학년의 참여가 떨어지고 애착심이 없는 것 같다"라며 아쉬워했다. 조진우(신소재ㆍ1)군은 "신소재공학계열이라는 것이 1학년때부터 전공이나 소속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서 과행사에 그다지 관심이 없고 대학생활이 과 중심이기 보다는 동아리나 개인적인 일이 중심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우리과'라는 소속감이 없으니 유대관계가 없음은 당연한 일이고, 앞서 학생들이 지적한 문제들은 현재 학부제의 교육과정 재편 논의에서는 다루어지고 있지 않아 학생들과 동문의 큰 혼란이 예상된다.
  이지홍(메카트로ㆍ부교수) 교수는 "우리학교의 학부제 추진은 교수ㆍ학생간에 자율적인 협의 속에서의 조직 개편보다는 정부로부터 많은 예산을 확보하려는 경쟁적 노력에 급급했다"라며 정부의 일방적인 지시에 따르는 우매한 학교 행정을 비판했다. 사실 우리학교는 학과통합을 전제로 전남대에 이어 두번째로 많이 정부로부터 16억원이라는 예산을 받은 바 있다. 그런 예산문제가 관련되어 있는 학부제는 각 학교간의 경쟁을 부추기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대학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고 학생들의 다양한 전공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학부제가 바람직한 면을 갖고 있음은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학교 당국은 학과 붕괴에 따른 문제나 학문의 특수성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보았나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그러므로 대학의 개방화ㆍ세계화를 표방하면서 학과 통폐합을 빨리 추진하려는 것을 기업의 경쟁 논리를 대학이라는 특수한 곳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무엇보다도 충분한 논의 없이 학부제만 실시하려는 것은 앞으로의 교육에 부정적인 면을 끼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에 정부나 학교 당국은 학부제를 이루기 위해 대학 구성원간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노력과 대학내ㆍ외의 전문가들을 통한 충분한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다. 그리고 대학도 정부의 정책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하기보다는 대학 본디의 모습과 나름대로의 특수성을 잃지 않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학문의 성격에 맞고 통합의 당위성이 타당한 교수ㆍ학생간의 협의가 잘되어 문제가 없는 학과를 대상으로 학과통합을 우선해야 할 것이다.

 

류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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