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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개같은 날의 오후'를 보고코미디로 분장한 여성들의 총궐기 대회
충대신문 | 승인 1995.10.16 00:00|(752호)

  '개같은 날의 오후' 는 40도를 웃도는 살인적인 더위, 모든 것에 짜증이 나고 누군가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금새 폭발해 버릴 듯한 숨막히는 여름날에 돌발적이고 우연하게 벌어진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10명의 여성을 대표로 추대한 이 땅 여성들의 총궐기같은 영화이다.
  이 영화는 삶을 꿰뚫는 진지한 통찰력이나 깊이있는 현실인식의 두꺼운 옷을 애시당초 벗어 놓고, 별 생각없이 양분되어버린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와 극단적으며 단순한 코미디적 상황전개의 장점을 충분히 소화해 낸 경쾌한 리듬감과, 우리 주변의 일상을 성실하게 포착해 준 건강한 시선을 미덕으로 하고 있다.
  심각한 메세지를 품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사회성 코미디' 혹은 '진지한 페미니즘'으로 인식하게 되는 당착은 비교적 잘 짜여진 시나리오의 덕택이다. 특히 앞 부분의 구성을 주목할만한데 수많은 등장인물들과 상황을 하나하나 늘어놓고 열심히 주워 담아가면 그 복잡한 와중에서도 복선을 끌어 모으는 여유는 본받을만하다.
  그러나 우려했던대로 10명의 주인공이 아파트 옥상에 쫓겨 올라가 기동대와 대치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영화는 느슨해지고 맥이 빠지게 되곤 한다. 한참 대책없이 떠들고 부술때는 활력이 넘치지만 조금이라도 생각을 정리하려고 멈춰서기만 하면 늘어지기 시작하고 한국영화의 고질적 맹점인 현실감없는 어색한 문어체의 대사들이 여전히 귀에 거슬린다. 이영훈의 음악 역시 뭐하나 기대감을 주지 않은채 다소 진지해진다 싶으면 판에 박힌 감상적 음악으로 땜질하고 급해진다 싶으면 빠른 음악을 써서 적당히 넘어가고 있다.
  '개같은 날의 오후'는 일어난 사건들이 우발적이고 등장인물들이 '의식화' 되어 있지 않은 핸디캡을 영화의 장점으로 뒤바꿔 버리며 엉뚱한 할머니의 자살까지 결합시켜 사건을 부풀리고, 그 때문에 그들이 매스컴에 의해 영웅이 되는 부분도 그럴듯하게 꾸며놓았다. 무엇보다도 10명의 자유분방한 주인공들에게 고루 포커스가 맞추어지도록 안배하고 노련한 배우들을 교통정리시킨 이민용 감독의 신인답지 않은 연출력이 돋보이며 옥상위의 반란을 주도했던 욕쟁이 호스티스 정선경과 푼수끼가 다분한 부녀회장 김보연, 남편의 외도로 열이 받은 송옥숙, 엉겁결에 철가방을 든채 사건에 휘말려든 가수 임희숙의 시원스런 연기가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직접적인 스토리와는 거리가 있지만 나름대로의 양념구실을 톡톡히 하는 이경영과 김민종의 지원사격도 유쾌하며 기동대장 정보석도 모처럼 코믹한 역할을 맡아 호연하고 있다. 다만 아직도 연극적인 대사를 읊어대는 이혼녀 손숙과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매맞는 여자 하유미의 교과서적인 대사는 오히려 영화의 생명력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주고 말았다. 덧붙여 김알음이 연기한 게이의 캐릭터는 사전에 충분히 검토되고 이해를 필요로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속전속결의 수박 겉 핥기식으로 처리되고만 것이 다소 아쉽다. 하기야 10명의 신세한탄을 다 담아내려는 욕심이 앞섰기 때문이지만 자칫 산만하게 치닫게 될지도 모를 극의 흐름을 그만큼 통제하고 있는 것에 다행스러움을 느낀다면 그런대로 덮어둘 수 있는 부분이다.
  '개같은 날의 오후'는 심각하고 진지한 문제제기를 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긍정적이고, 감독이 페미니즘을 의식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자칭 페미니즘 영화를 표방했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서 느껴지는 속이 뒤집히는 듯한 타협도 보이지 않으며 '닥터봉'같은 일그러진 로맨틱 코미디로 본전을 챙기려는 충무로의 나태함을 슬쩍 비웃어 줄 수 있는 건강하고 즐거운 영화이다.
  신예 이민용 감독은 데뷔작으로 무난한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에게는 그만큼 앞으로 짊어질 짐이 더 커진 셈이다.

 

임진석(경제ㆍ4)

충대신문  news@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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