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백홍기씨를 만나

  "주먹을 쥐어야 펼 수 있듯 골짜기를 지나야만 정상에 오르듯이, 삶에 대해 용기를 갖고 도전하며 산다는게 중요하죠." 백홍기씨는 82년도에 충남기계공고를 졸업한 이후에 우리학교 법학과에 입학한 선배이다. 최후에 웃는 자가 진정으로 웃는 자라고 했던가? 처음 마주한 자리였지만 그에게서는 꿈을 이룬 자만이 갖는 여유가 있었다.
  5남 1녀 중 둘째로 자라온 그는 현재 89년에 이미 그의 반쪽이 된 아내 임재옥씨의 남편으로 6살짜리 아들 준현이의 아버지로서 자리를 점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배운 것은 써먹어야 한다는 말처럼 처음에는 전공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중, 어느 범죄자가 내던진 '유전무죄,무전유죄'라는 말에 공감을 하게 됐고, 사회 구조적인 모순을 조금이라도 타파해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붙는 것에 보장이 없다는 사법고시에 대한 뜻을 품은 것은 87년이었다. 그때에는 운이 따랐던지 법무관 1차 시험에도 합격하고, 연이어 치렀던 사법고시 1차에서도 합격했다고 한다.
  "2차시험에서 계속 낙방하다보니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계속적인 시험 준비속에 존경하던 아버지의 부음도 감당해야만 했고, 결혼을 한 상태에다, 아들 준현이의 출생은 생활비에 대한 부담으로 저를 죄어 왔습니다." 결국 사법고시에 대해 그가 품은 뜻은 이러한 주위의 상황으로 깨져야만 했고, 어쩔 수 없이 법률구주관리공단에 입사원서를 던져야만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곳에 합격한 이후, 연수를 받는 과정에서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감행해서 자신의 뜻을 이루었듯이, 그도 꿈에 대한 미련으로 위화도 회군을 했다. 주위의 빗발치는 여론은 그를 더욱 위축시켰다고 한다.
  법률구주관리공단에 붙었으면 거기나 얌전히 다닐 일이지, 왜 꿈을 못 버리느냐? 이제 처ㆍ자식 생각할때가 아니냐?는 비난속에 시험은 계속 낙방하고, 이런 상황은 그를 자폐증으로까지 몰고 갔다고 한다. 산속에서 고시공부를 하다가 가끔 산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움직이는 차들을 보노라면 세상과 다른 모든 사물들은 저렇게 유동하는데 자신만 정체된 느낌도 가졌다고 한다.
  산을 오른 자만이 산을 오르던 과정에 대해 얘기할 수 있듯이 그도 웃으면서 앞으로 판사나 환경관련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세가지입니다. 필요할때 정의로울 수 있는 용기, 즉 결단력을 말하죠. 그리고 겸손과 성실입니다." 당당하고 힘찬 그의 어조에서 정의로운 법조계의 미래를 가늠해 본다.

 

김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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