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 남자의 ‘첫 경험’, ‘자유’라는 문턱에서

다수 남자의 ‘첫경험’
  나는 개인적으로 1992년 7월 27일에 논산에 입대를 해서 1994년 10월 6일에 전역을 한 예비역이다.
  뜨거운 햇빛이 드는 7월에 연무대로 가는 나의 마음은 사뭇 죽음을 앞둔 사람마냥 비장하기까지 했다.
  입소할 시간이 되어 식이 거행되고, 식이 끝나고 부모님께 걱정마시라는 말과 함께 ‘진짜 사나이’가 울리는 그 연병장으로 ‘아, 이제 사회와는 단절’이라는 생각을 하며 뛰어가던 기억이 난다. 그곳에서 보았던 기간병들이 인간을-아니, 벌레를-다루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 강요된 명령에 의해 인간은 저렇게 추악한 행동을 할 수 있구나 하는 그런 느낌. 절대 권력에 의해서 한 개인의 개성과 의지는 무참히 깨어지는 그러한 사회. 그것이 바로 나의 군대의 첫 느낌이다. 물론 자대에 가서 그나마 인간적인 교유도 있었지만, 난 군대를 통해서 한 개인이 강력한 권력과 획일적인 조직에서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계를 느꼈다. 물론 94나 95처럼 군대에 곧 갈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개인이 통제된 조직속에서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질감을 말하고 싶은 것이고, 첫 경험이라는 것이 경험을 겪게되기 전에 가졌던 자신만의 기대만큼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설레임으로 다가오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남    고동선(고분자공ㆍ2)

 

‘자유’라는 문턱에서
  첫경험이라는 단어 자체의 매력은 마력에 가깝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함과 더불어 처음이라는 서투름에 시행착오라는 오점을 남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쩜 우리는 매순간 순간 새로운 시간의 첫 경험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순간과 찰라의 첫경험.
  우리 모두는 대학이라는 이곳에서 과거 고등학교때까지 맛보지 못한 자유라는 첫경험에 부딪히게 된다.
  얼마되지 않는 수업, 보충 수업도, 야간학습 시간도, 선생님들의 감독도 없는 너무나 낯선 자유의 첫 경험.
  대중에 휩쓸려 각자의 길을 찾지 못하고,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무엇을 향하는지도 모른채 흘러 헤매기도 한다.
  또, 혼자의 외로움에 익숙치 않아 누군가가 자유를 구속해 주기를 바라는지는 않는지…
  조금은 세련되게 첫경험을 대처한다면, 우리가 어떤 굴레속에서 자유를 조금 구속 받을때쯤 여유있는 표정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매순간을 지금이 가장 소중한 순간이라는 생각으로 찰라의 첫 경험까지 소중히하는 충대인이 되길…
 
여    김수연(농경제ㆍ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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