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의 칼날로 윤리성을 보호한다(?)

  세간의 화제를 모으며 새로운 에로틱 영화의 부활을 예고한 ‘옥보단’이 흥행에 성공하여 본격적인 장기상영으로 돌입하고 있고, 말도 많은 폴 베호벤의 ‘쇼걸’이 약 2분 정도의 삭제를 무릅쓰고 상영된다. 청소년에 대한 유해 환경의 조성이 심각하다며 얼마전 KBS 9시 뉴스에서는 공연윤리위원회(이하 공윤)의 심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골자의 뉴스를 방영한 적이 있다. 거리를 온통 장식하고 있는 선정적 포스터들과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비추더니 몇몇 단체와 평론가들이 나와서 청소년들의 보호를 위해서도 심의는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과연 이것이 맞는 이야기일까? 공윤의 심의는 강화되어야 올바른 것일가? 새롭게 제정될 영화법을 살펴보면서 공윤과 심의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보자.
  지난 9월 15일 문화체육부는 “무한경쟁 시대에 영상산업의 국제 경쟁력 확보와 제반 규제사항의 완화 및 자율적인 창작 여건의 제도적 조성ㆍ지원”이 제정 이유라며 ‘영화진흥법 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WTO 체제 출범으로 본격화된 자국 중심의 전세계적 경쟁관계의 돌입으로 특히 영화, TV, 위성방송, 비디오, 멀티미디어 등의 영상매체와 그 토대가 되는 영상산업의 중요성과 전반적인 영상문화진흥 기반조성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제정되는 ‘영화진흥법’이기에 영화인과 영상사업 관련자들은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일제시대의 영화 검열법에 그 뿌리를 두고 1962년 제정된 현행 영화법, 그간 6차례에 걸친 법개정이 있었으나 ‘부당한 통제와 규제 그리고 창작의 자유에 대한 원천적인 구속’이라는 주요 골자를 30여년 동안 유지해온 낡은 전근대적인 산물이 비로소 사라지고 진정 ‘영화진흥’을 위한 법률이 제정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무관하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고, 어느 측면에선 개악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게 만든다.
  정부가 그동안 주장해온 문화 고부가 가치시대의 경쟁력 강화, 여타 산업부분에 대한 관료적 규제완화 등 정부의 정책과도 오히려 반대의 입장을 드러내고 있고 그동안 영화인 및 관계자들이 주장해 온 ‘사전심의’ 폐지와 전용관 제도의 도입, 실질적인 재원 지원과 세제혜택 등 영화인들의 견해는 받아들여진 것이 없다. 오히려 ‘제12조 영화의 심의 조항’에 “모든 영화의 상영전 공연윤리위원회 심의 의무”를 명기하여 실질적인 규제와 검열을 강화하고 있다.
  그동안 심의제도가 영화인들의 예술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창작의욕을 저하시켰을 뿐만 아니라, 정권의 체제유지를 위한 한 방편으로 작용해 왔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심의기준의 모호함으로 부당한 처사가 속출했음도 분명한 사실이다. 얼마전 관심의 촛점이 되었던 ‘해적’이라는 영화는 이야기 전개를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삭제를 당했었다. 단지 폭력이 지나치다는 이유만으로.
  영상문화의 윤리성 측면에서 심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견해가 시민단체를 통해 주장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폭력과 선정성으로부터 청소년과 사회를 지켜야 한다는 논지의 이 주장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온갖 향락산업이 판을 치고 누구나 쉽게 포르노물을 접할 수 있는 현실에서 심의를 강화하는 것으로 영상문화의 윤리성이 사회의 건강성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퇴폐적 향락산업의 번창과 외설적 영상문화의 급속한 성장이 검열의 칼날이 시퍼렇게 그 위용을 자랑하던 5, 6공화국 시절에 이루어진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는 지난날의 경험을 통해서 영상문화의 윤리성은 결코 심의의 강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총체적인 사회적 문제로의 접근이 필요한 문제이며, 사회의 전반적인 자정능력과 문화적 정서와 의식의 고양을 통한 ‘비판적 의식’의 강화로 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외설적인 영상물에 대해서는 풍속영업의 규제에 대한 법률등 타법으로 규제 가능하고, 세제 및 경제적 불이익을 주는 방법 등으로 규제 가능하다. 실제적인 규제방안등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정서함양을 위한 문화지원정책엔 소극적인 정부에게 심의의 강화를 통한 윤리성의 보호를 바라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홍병현<서울영상집단ㆍ기획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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