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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바로세우기’ 조류에 즈음하여 출판업계들의 오류를 알아본다.레테의 강물을 마신듯한 ‘과거망각증’
충대신문 | 승인 1996.02.23 00:00|(758호)

  요즘 우리 독서시장엔 과거 청산에 관한 정치관련 서적들이 앞다투어 출판된다고 한다. 특히 작년말 5.18특별법이 제정되고 관련자 처벌을 위한 수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에 발맞추어 이런 출판물이 붐을 이루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출판계의 지금과 같은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망각의 강물을 마신 우리 민족의 역사적 전통을 살펴보면 한 때 사회적인 모든 관심이 너무 그쪽으로만 쏠린 다음, 어느새 너무나 빨리 그때 그 상황을 잊곤 하는 일이 반복되곤 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사회적인 커다란 이슈가 떠오르고 그와 관련한 논의가 성급하고 빨리 진행되면 될수록, 모든 신문ㆍ방송ㆍ잡지ㆍ출판물이 온통 이슈로 채워지면 질수록 벌써 망각과 과거의 화석(化石)화는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당대의 출판물이나 출판시장이 그 시대의 상황과 깊이 연관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책 한 권이 당대의 독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연속하는 수많은 독자를 염두에 둔 살아숨쉬는 정신적 생명체라면 당내의 분위기나 그 시대의 인기에만 영합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이든지 자주 떠들고 자주 거론되고 자주 보이다보면 좋은 사안이든 나쁜 사안이든 그것에 익숙해져 버린다. 결국 우리는 한때 유행처럼 우루루 쏟아지는 말들에 묻혀 그 이슈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검증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망각해 버리는 것이다.
  레테의 강은 죽은 자가 강을 건너면서 그 강물을 먹으면 이승의 기억을 모두 잊는다는 죽음의 강이나 망각이란 잊는다는 것이고 잊는다는 것은 죽은 기억을 말하는 것이며 죽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의 정신 일부가 죽어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출판물, 산것은 죽여 화석(化石)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을 일깨우고 다시 되새기며 살아숨쉬게 하는 말로 가득 채워져야 할 것이다.
  1951년에 창설된 이스라엘 비밀정보기관은 10년이란 오랜 세월을 추적한 끝에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서, 유태인 학살에 앞장섰던 전범 아이히반을 1960년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체포해 재판에 회부했다.
  프랑스 정보국 또한 전쟁이 끝난지 수십년 후까지 각국으로 도피해 숨어살던 전범들을 추적, 체포하여 자국의 재판에 회부했다.
  그들은 이미 고령이 되어 자연사를 앞두고 있던 전범들까지 끝까지 추적하여 역사의 심판을 받게 함으로써 인간이 같은 인류에서 저지른 죄악은 그에 상응한 대가를 치루고야 만다는 역사의 교훈을 보여주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장본 국가로서 전후 40년간 분단되어 이념의 벽을 사이에 두고 민족이 고통을 당해야 하는 역사의 보속을 경험했다.
  그러나 일본은 태평양 전쟁과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동국가로서 전인류와 세계에 저지른 죄악에 알맞는 댓가를 치루지 않았다.
  오히려 전후 일본은 일본에 진주한 승전국인 미국의 도움으로 너무나 빠르게 전쟁의 흔적을 지우고 성장을 거듭하여 또 다른 의미의 세계강국이 되어 주변 국가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세계대전의 피해 당사국이면서도 국민과 민족이 분단되는 2중의 쓰라린 고통을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동족상잔의 전쟁이란 참혹한 비극을 겪어야만 했다.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이 이민족(異民族)의 침략으로 수십년간 나라를 빼앗겼다가 광복이 되면서 다시 외세에 의해 분단되는 고난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우리 민족에게 가해지는, 번복되는 고난의 뿌리와 책임은 당연히 일본에게 있다. 그동안 일본은 자기들이 일으킨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들, 즉 정신대에 강제로 끌려갔던 여성들과 역시 강제로 징용에 끌려가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에 대해, 또 원폭 피해자에 대해 뚜렷한 대책이나 사죄니 반성을 보이지 않아왔다.
  그런데 그런 일본이 이제 독도까지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며 나서고 있다. 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어이가 없고 기가 꽉 막히는 경우가 아닐 수 없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모든 원인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스스로를 못지켜 역사의 고난을 자초한 것도 우리 자신의 책임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해방 이후 일본의 역사적 죄악에 대한 응당한 대가를 치루게 하지 못했음이 큰 우리의 잘못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일본 제국주의 야욕에 대한 과거청산이 분명히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며, 이것은 그리스 신화 속의 저승의 강이자 망각의 강인 레테의 강물을 마신듯한 우리 민족 ‘과거망각증’ 때문이다.

김경만<한국시문화회관ㆍ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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