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변화의 굴곡

  “20세기 접어들어 인간정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고 대중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것은 바로 영화와 대중음악입니다. 특히 대중음악은 문화적 파장, 심리적 영향이 엄청나 모든 이데올로기의 담론이 되므로 예전부터 지배자는 이것을 어떻게 장악하고 발달시킬지 부단하게 노력해 왔습니다.”
  지난 5일, 문원강당(구 문대 소강당)에서 사회대 학생회와 TJB 대전방송이 공동주최한 ‘대학문화, 그 올바른 이해를 위한 공개강좌’ 중 첫번째 한국대중음악 70년사에 대한 강연에 강 헌(대중음악평론가)씨는 이렇게 말했다.
  대중음악을 규정하는 것을 대중시장에서 대량생산되어 배급되고 소비되야 한다는 점으로 볼 때, 그는 1920년 윤심덕의 ‘사의 찬미’를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효시로 본다. 본격적인 대중음악의 여명기라 불리는 1935년을 전후하여 ‘황성옛터’, ‘사의 찬미’등 일본의 엔카를 따라한 3박자의 트로트가 나타나고, 현재 정글의 논리로 가수들에게 무대공포증과 자살충동이라는 상황을 유발하는 스타시스템이 바로 이시기에 완성된다.
  해방이후 민족음악의 수립, 창출이 매우 시급해져 김순남등 진보적인 음악가에 의해 해방가요가 불리웠으나 곧 끊어지고, 그때를 기점으로 미군기지를 중심으로한 기지촌문화가 발달한다. AFKN방송이 나오면서 1950년대 중후반부터 댄스뮤직-맘보, 차차차, 탱고, 부기우기등 저급미국문화가 일방적으로 유포되었는데, 특히 맘모의 유행이 댄스클럽 성행을 유발해 사회적으로 큰 반항을 일으켰다.
  1980년대 들어 TV라는 새로운 매체는 음반산업, 하드웨어의 발전을 비약시키는 토대가 되어 선진대중음악의 지형을 구축하는데 큰 몫을 한다. 그리고 조용필의 트로트의 재해석과 록큰롤, 민요의 리메이크, 발라드, 테크노등 여러 음악을 두루 섭력하여 1인 제국시대를 맞으면서 대중음악의 수용자층이 10대로 내려온다.
  여기서 또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안티네트워크를 외치며 주류음악의 반대급부에 존재했던 언더그라운드 음악이다. 그러나 엄청난 패러다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고, 주류적 사고에 대한 대안적 태도와 문제의식의 결여로 언더그라운드의 ‘신화의 궤멸’ 되었다고 강헌씨는 말한다. 또한 80년대 진지성과 장인정신을 필요로 했던 메세지중심이 90년대에는 변화가능성과 계승을 중심으로 하는 이미지로 바뀌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여 흑인음악이 대중음악의 주류를 이루고, 대중들의 분절적 시각화가 댄스뮤직을 유행하게 한다. 또한 서태지는 10대가 기성세대에 느끼는 ‘억압과 분열’을 표현함으로서 10대의 문화적 대변인이라 불린다. 그리고 그는 요즘 샘플러, 시궤스의 악용으로 표절이 난무하고 매체상업주의가 성행할때, 전체 대중음악이 후퇴하며 일본문화의 개방의 열세에 밀릴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지금 한국대중음악의 정체성의 위기는 생산자가 명성만을 쫒지 말고 음악철학으로 무장하고, 수용자와 매체 모두 자기 개혁을 할 때 타파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과연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는 바로 우리의 손에 달렸다고 하며 강연을 마쳤다.

박윤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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