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약’과 ‘사약’

  신입생 환영회, 동문회, 동아리 환영회, 모든 행사의 뒤풀이 등 여러 이름을 가지고, 술이란 매개체를 통해 선후배 만남이 시작된다.
  자유를 누리며 한 잔, 선배 권유로 한 잔, 분위기가 좋아서 한 잔, 사람이 좋아서 한 잔….
  술은 마시는 분위기에 따라 ‘보약’이 될 수도 있고, ‘사약’이 될 수도 있다. 모든 사람들이 어찌 ‘보약’을 마다하랴. 하지만 새학기 술자리는 ‘보약’이 모두 ‘사약’으로 탈바꿈을 하고 만다. 술이 ‘억지로’란 수식어를 통해 인체에 흡수 된다면 자율신경의 마비 증세로 위장의 기능저하를 일으켜 과민성대장증후군을 나타낸다. 또한 스트레스로 인한 구토, 심장 부담으로 인한 혈액 순환 저하로 온몸의 맥이 풀리는 등 신체의 이상반응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이 분위기와 스스로 자유에 의해 술을 마신다면 자율신경의 활발한 반응으로 신체가 왕성한 신진대사를 일으킨다.
  이번에 문제가 된 사발식이 언제부터 우리의 술문화에 침투했는지 모르지만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옛날의 사발식은 술 아닌 정을 동기들과 나눠마시는 의미를 지녔지만, 현재의 사발식은 ‘후배 길들이기’란 목적을 가지고 있다. ‘길들이기’란 말 자체가 ‘억지로’란 수식어를 가미하고 있지 않은가. 둥근 원을 그리며 함께 술을 마시고 사회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 하고, 별을 보며 시와 꿈을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는 ‘억지로’라는 단어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 전체가 개인주의로 바뀌었을때 ‘억지로’란 이름을 가지고서라도 과거의 돈독한 정을 쌓을 자리를 마련해야 했고, 그 의미를 악용한 결과 오늘의 ‘후배 길들이기’가 생겨나게 되었을 것이다.
  지금의 술자리를 생각해보자. 어느 술집에 가도 10명이 함께 앉을 자리가 없다. 옛 생각에 호프집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마찬가지이다. 지금 한창 유행하는 째즈바는 웨스턴바에 들어가보자. 시끄러운 음악과 현란한 조명에 1대1의 귓속말만이 가능할 뿐 예전과 같은 의견 토론은 있을 수 없다. 함께 마시는 술 대신 혼자 마시는 병맥주가 있고, 자신의 생활 얘기 대신 노래의 흥얼거림과 리듬의 느껴짐이 있다.
  개인주의화 된 술문화 속에서 충대인은 과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냥 새동네 술문화에 묻혀 강요된 술자리를 이어갈 것인가?
  자신의 처지에서 과연 어떤 술자리가 되어야 하는가 고민하자. 그리고 토론하자.
  오늘도 충대인은 새동네에서 술을 마시며 불의의 사고를 당한 토목공학교육과 학생을 차츰 머리속에서 잊어버리고 있다.

김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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