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직업은 노동 운동가란다.”

  ‘처음처럼’
  ‘처음으로 하늘에 안기는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딛고 일어서는 어린싹처럼’
  지난 22일 대학로 21C 소극장에서 펼쳐진 ‘노동자를 싣고 가는 아홉대의 버스 2’는 적은 관객과 작은 무대위에서 그러나,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속에서 진행되었다. 기존의 연극 시나리오를 가지고 무대에 올린 것이 아니라 실제 노동자들의 수기를 모아 거기에 배우들의 자유로운 몸짓이 더해져 만들어진 이번 연극은 엉뚱하게도 ‘닭싸움’으로 시작되었다. 배우들과 닭싸움을 하기 위해 무대위로 올라간 관객들은 즉흥 대사를 하며 연극속으로 더 빨리 동화되어 가는 듯 했다.
  출감! 99번 김영철!
  용접일을 20년간 해오며 노조위원장을 지냈던 주인공 영철이 감옥에서 나오는 날이다. 그러나 아내와 아이들을 찾아 집으로 돌아왔을때 아내 장순녀는 어린 자식들을 내팽개치고 도망가고 없다. 그후부터 영철은 기나긴 여정을 통해 아내를 찾아 헤메고 그러면서 만나가는 노동자들의 삶을 모두 9막으로 나뉘어 이야기는 흘러간다. 영철은 출감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의 5천억 비자금 사건을 코미디화 하여 집체극으로 연습하고 있는 옛 동지들을 찾아가고, 화학공장에 10년이나 다니면서 열심히 노조운동을 했던 창수는 ‘말초신경마비’라는 직업병을 얻어 미쳐버렸고…. 총 8명의 남녀 배우들이 역할을 번갈아 가며 열연하는데도 어색함이 없는 것도 높이 살 일이지만 주인공 영철의 지극히 절제되어 내뱉는 대사나 행동 등은 극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데 충분한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열철은 출감 이후 너무나도 변한 세상에 회의를 느끼며 자신이 목숨걸고 했던 지난날에 대한 후회 아닌 후회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는 어느날 벤취에 앉아 자신이 감옥에 있을 동안 생활고를 위해 다방에서 마담으로 일하고 있는 아내를 기다리며, 여기서 영철은 관객에게 처절한 질문을 던진다. “제가 아내를 꼭 다시 만나야 할까요? 만일 만난다면 어떻게 아내를 설득시켜야만 할까요?”
  “아내에게 진정한 사랑을 보여줘라”, “아이까지 버리고 나간 독한 여자를 다시 찾아서는 안된다”, “자존심도 없냐, 니가 힘들때 널 떠났지 않느냐” 등으로 관객들이 대답했을때 이야기의 주제가 왠지 집을 나간 부인을 찾아오느냐 마느냐가 되어 버리는 텔레비젼의 연속극이 아닐까라는 찝찝한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여하튼 영철은 다시 아내를 만나고, 결혼반지를 빼서 자신에게 건네주는 그녀에게 이제 다시는 노동운동을 하지 않겠으니 돌아와 달라고 애원하고 사라진다. 그러나, 그때 갑자기 밀려오는 허무함….
  이것이 주인공 영철의 본모습이었구나 라고 실망하고 있을때, 극은 반전된다. ‘전노협’ 건설과 함께 다시찾은 가족의 단란함이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가정환경조사서를 쓰는데 영철은 최종학력과 직업을 속이려 들지만 그의 아내 장순녀는 자신있게 크게 말한다. “아빠의 학력은 고등학교 중퇴이고, 직업은 ‘노동운동가’ 시란다.” 앞에서 떨떠름했던 기분은 싹 가시고, 돌아와서 더 당당해진 아내 장순녀에게 관객들은 더 많은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육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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