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의견표명, 비판 수렴의 언로

  수업에 꼬박꼬박 들어가고 공부를 열심히 해 시험을 본 석규가 있다. 수업을 거의 빠지고 시험기간에 벼락치기로 공부해 시험을 본 학표가 있다. 그러나 학표는 운좋게 선배가 찍어준 문제가 나와 A+를 맞았는데 석규는 C를 받았다. 이것에 부당함을 느낀 석규는 이 불합리를 대자보에 적어 게시판에 붙였고 학내에 이 이야기가 퍼지게 됐다. 학표는 대자보를 보고 죄책감을 느끼며 석규를 만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오해를 푼 후 서로 친구가 된다.
  어디서 들어본 이야긴데 하며 갸우뚱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바로 92년 인기있는 TV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에서 탤런트 홍학표와 한석규가 연기했던 내용이다. 지금의 우리들에겐 개인이 자보를 붙인다는 것이 매우 생소하지만 예전엔 누구나 붙일 수 있는, 하나의 의사 소통 매체였다.
  한글학회가 지은 우리말 큰사전을 보면, 대자보란 중국에서 비롯된, 큰 글자로 된 일종의 벽신문이라고 나와있다. 이처럼 대자보는 엄연한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하나이며 여러가지 역할을 가지고 있다. 첫째, 알림의 기능이다. 요즘 학내에서 가장 많이 보는 것이 알림대자보인데, 각종 동아리나 학과의 모임을 대자보를 통해 알려내고 있다. 둘째, 학내의 여러 문제, 등록금 투쟁이라든지 작년 민족충대 조직사건 등이 터졌을 때, 사건경과에 대해 알려내며 그것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는 역할을 한다. 어떤 사건이 있을 때 동아리나 학회의 이름을 걸고 자신들의 입장을 나타내었던 것이다. 예전 군부독재의 삼엄한 시절엔 서울의 어느 대학에서 이런-주로 체제 비판적인 내용의-대자보가 붙었다는 것이 9시 뉴스에 나올 정도로 영향력은 컸다. 셋째, 단지 자신의 입장을 나타내는 것을 넘어서 나와 의견이 다른 대자보에 대해 반박하는 대자보를 붙이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의견을 주고 받는 토론의 구실을 제공하기도 하고 올바른 여론형성에 한몫 하기도 했던 것이다. 물론 반박대자보를 쓸때 지성인으로서의 예의를 갖춘 비판의 내용이 들어가야 함은 당연하다.
  이러한 역할에도 불구하고 요즘 대자보 문화가 많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김영신(문정ㆍ1)양은 “대자보를 읽으면 수긍가는 부분도 많고, 읽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잘 안 읽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전반적인 사회의 흐름이 점점 개인화되면서 사회 정치적인 문제에는 무관심해지는 경향이 대자보를 별로 안읽게 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또하나 대자보 부착장소가 문제이다. 학내에 지정된 게시판에만 대자보를 붙이게 되어있으나 게시판이 매우 협소한 관계로 수많은 대자보가 벽이나 바닥, 계단옆에 붙어있다. 그런데 대학본부에서는 단지 환경미화라는 이유로 무조건 게시판 외에 대자보는 제거하라고 지시를 내려, 붙이는 자와 떼는 자와의 보이지 않는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 제 1학생회관 2층에 후생과 사무실에서 허가를 받으면 벽에 부착해도 되지만 그 수많은 대자보를 일일이 검사받아 붙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학내 대자보보다 외부홍보물이 게시판을 점령하고 있다는데 있다. 1학생회관 오른쪽에 있는 게시판을 보면 주로 외국어학원 광고를 하는 포스터가 80%이상 붙어있다. 분명히 불법인데도 불구하고 학원에서는 아르바이트 학생을 쓰거나, 포스터를 붙이면 학원을 한달동안 공짜로 다니게 한다는 조건으로 우리학교 학생을 이용해 곳곳에 붙이고 있는 것이다. 제1학생회관에 있는 이한묘(후생과직원ㆍ45)씨는 “원래 게시판이 하나밖에 없었는데 학생들이 요구해 하나 더 만들어줬더니, 외부 홍보물한테 다 빼앗기고는 벽에 붙은 대자보를 뗀다고 불평을 한다.”고 말했다. 학생을 위한 게시판에 학생이 쓴 대자보가 붙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외부홍보물을 부착하는 것을 보면 즉시 관리실에 신고해 부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지정된 게시판에 붙이는 것도 좋지만 강의실 입구에 깨끗하게 붙여 논다면 강의 시작하기 전에 서성거리면서 읽을 수 있어 선전의 효과가 좋다. 무조건 게시판에만 붙이라고 할게 아니라 적당한 공간에 깨끗이 붙이고 잘 수거한다면 대학교다운 분위기를 내는 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문과대의 몇몇 강의실을 들어가면 금강문학회나 시목문학회에서 대자보에 시를 써 붙여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을 통해 대학생다운 멋을 느낄 수 있으며 앞으로 활성화되야 하는 부분이다.
  대자보는 사회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대학만의 고유한 문화다. 또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해 공론화 시킬 수 있는 하나의 언론이다. 대자보를 만드려면 한 사건이 있어야 하고, 그것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 명확해야 하며, 표현력, 대자보에 써서 붙여야 하는 등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 과정안에서 자신이 정립되어 배워나갈 수 있는 것이다. 적당한 부착공간이 확보되고, 공개적이고 솔직한 의견을 표현, 수렴되어 실천으로 이어진다면 대자보는 대학생다운 문화로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박윤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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