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비앞에서
송우범(영문ㆍ4)
밀려온 어둠의 단청이 빛가루를 물들이네
이제 한숨을 한 모금 넘겨야지
황하를 분주히 건너오던 황사보다 더 뿌옇게
송화가루 날리는 들녘, 산골짜기
어둠을 호흡하네
시비, 아픈 기억의 뭉쳐짐 혹은 파임
시들은 풀들
오랜 가뭄에 모래알 같이 타 들어간 문자들
금간 모서리마다 시인의 남겨진 유언을
폐병으로 쓸쓸히 웃다 간 그의 생애를
이야기하지만
돌처럼 단단한 말들은
쉽게 무너지고 헝클어져
오랜 후 풀조차 감추지 못한
한 뼘의 손바닥만한 이름은
내 입 속에서 마른 풀 냄새로 맴도네
어둠의 단청 속으로 돌아서기 전
금간 그의 생애의 흔적이 아름답다 고백해도
나는 그를 위한 한 주먹의 풀도 되지 못했네
산사 어귀, 목침 같은 흙을 베고,
서 있어, 단단한 소리로 장승처럼 서 있어
잉태된
잉태된 어둠의 입술만이 시비를 쓸어
비로소 그를 덮어주고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