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잔에 세상을 묻는다”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뵙기가 쉽지 않아졌다. 중ㆍ고등학교때는 새벽밥 먹고 학교가서 12시가 다 되어서야 들어와서 그렇고, 대학에 와서는 MㆍT와 동아리 모임이다 해서 술이라도 한잔하면 시계바늘은 오늘을 지나 내일을 향하고 있다. 이런저런 핑계가 자꾸 부모님 얼굴뵙기를 힘들게 한다. 오는 8일이 어버이날이라고 호들갑 떠는것도 우습지만 그래도 필요한 시간이 아닌가.
                                                                                                                             
 -편집자주-

 

  “아주머니 여기 김치 좀 더 주세요.” “예, 잠깐만요.” 서른명이 넘는 건장한 청년들이 최후의 만찬(?)을 즐기느라 더없이 분주한 모습들이었다.
  우리네의 아버지, 어머니는 어떤 모습일까? 항상 집안에서 보는 자상하고 푸근하고 때로는 너무 보수적이어서 고루하기까지한 어버이들이라고 얼핏 스치기도 한다.
  공부를 소홀히 할라치면 “공부해라. 공부하는데 돈은 얼마든지 대줄테니까”하고 말씀하실때는 그 한없는 너그러움에 일순간 감동받지만, “아버지! 용돈 좀 올려줘요”라고 큰 맘먹고 반항(?)을 하면 “땅파도 돈 나오디” 라는 말한마디에 용돈 올려달라고 말한 입이 무안하기만 할 뿐이다.
  그래서 어버이의 모습을 생각하고 생각하던 끝에 찾은 결론은 내 친구의 어버이다. 자신의 바로 옆 친구를 보아라. 나와 자라온 환경이 약간은 다를지라도, 그대들의 부모님이 우리 친구들을 기른 길은 조금씩 다르더라도 우리들을 키운 마음은 한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자식에 대한 ‘내리사랑’
  내가 찿아간 친구의 어머니는 조그마한 식당을 운영하신다. 지금 우리학교 95학번인 친구가 5살적에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지금까지 3남매를 키워 오셨다. 어머니의 아침은 새벽 5시부터 시작된다. 새소리도 귀뚜라미 소리도 아닌 요상한 알람시계 소리에 눈을 뜬다. 이제는 그 시계도 필요없는 듯하다. 근 20여년을 이런 생활에 익숙해져서…
  이 시간에 일어나서 하는 첫번째 일은 새벽장을 보거나 손님들이 먹을 생수를 떠온다. 오늘은 생수를 뜨러 가신다. 워낙 떠올 물이 많아서 자동차로 물을 나른다. 오늘 아침에는 단체손님 3팀을 받기로 했다. 바쁘다. 근래 경기가 불경기라느니 경기침체라느니 하는 말을 듣지만 직접 피부로 느끼시는 분이 어머니이시다. 그나마 요 며칠은 다행이다. 식당근처 충무체육관에서 핸드볼대회가 있어 단체손님들이 많이 오기 때문이다. 이럴때는 같이 일하던 아주머니들을 내보낸 것이 아쉽기만 하다.
  혼자서 주방일, 홀에 있는 손님들 잔심부름까지 도맡아 하려면 힘들지만 힘들다는 소리를 여간해서 하시질 않는다. “요즘 사람들은 몸이 너무 약해. 옆집 식당 아줌마는 젊어서 그것 조금 일하고 병났다고 하니 말야.” 이야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7시부터 밀려오는 손님들로 정신없다.
  돌도 소화시킨다는 나이에 그것도 핸드볼선수라 먹성이 보통이 아니다. 공기밥에 된장국 한사발은 눈깜짝할 사이다. 오늘은 아들이 10시부터 수업이란다. 너무 분주해서 아들마저 수업시간을 놓쳤다. 7시, 8시, 8시반에 예정된 손님들을 치르고 나니 벌써 9시다. 식당은 수십개의 빈그릇들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몇 조각남지 않은 반찬들로 그들의 식성을 짐작케 한다. 9시가 한참 넘어서야 아침식사다.
  식당에 가득 널린 빈그릇들이 아들의 학교가는 발목을 붙잡는다. “이왕 늦은거 그릇 빼고 가거라.” “수업들어가야 되는데…” “그럼 빨리 가봐, 수업을 빼먹으면 안되지…”
  오전 11시, 장부를 뒤적인다. 점심에 2팀, 저녁에 4팀, 어머니의 머릿속에는 어제 저녁에 학생단체 손님을 데리고 왔던 선생님이 생각나시나 보다. 1인당 3천 5백원씩 받는데 그냥 4천원씩 받으라던 말이 영 개운치가 않으셨던 모양이다. 옆집에서 놀러온 아주머니와 함께 잠시 숨을 돌린다.
  오후 12시30분, 열대여섯명의 학생이 먼저왔다. 역시 운동선수라는 증명이라도 하듯, 그릇들은 깨끗하기만 하다. 설겆이 하기가 조금은 수월해진듯 하다. 사람과 밥과 시간과의 싸움이다. 점심에는 아침에 한번 일을 치뤄서 그런지 일이 손에 익다.
  오후 2시 30분, 이제 어머니는 점심을 드실때이다. 몸을 많이 움직여서인지 밥맛은 좋다. 어제까지 찌뿌둥한 날씨가 오늘은 맑게 개었다. 몸도 노근노근 해지는 것이 봄기운을 이길수 없는 듯 하다. 하지만 할일이 있다. 이정도의 여유로 충분하다 싶으셨는지 빈그릇 치우는 일부터 시작하신다. 하나하나 그릇을 쌓으실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하실까. 자식, 아니면 야속하게 먼저 가버린 남편… 넘겨짚기가 미안 스럽다.
  벌써 5시다. 6시반부터 몰려올 선수들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찬거리 준비하고 밥하고 국 끓이고 하다보니 어느새 6시 30분이다.
  6시반이 조금 넘어서 선수들이 오기 시작하는 저녁시간이 제일 고달프다. 다른 직장을 가진 사람들은 뉘엿뉘엿 지는 해를 보면서 따뜻한 저녁밥을 떠올리지만 어머니에겐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들도 일찍 돌아왔다. 일손이 워낙 귀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도와야 한다. 그래도 저녁시간에는 아들이 와서 거들다 보니 한결낫다.
  수십명씩이나 되는 손님들의 숟가락, 젓가락 놓는일에서 부터 반찬 놓는 일, 밥 나르는 일… 일이 별거 아닌것 같지만 잔손이 많이 간다.
  9시까지 쉴새없이 손님들이 온다.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는 말이 정말로 실감난다. 9시가 넘어서야 드디어 저녁식사시간이다. 국한술을 뜨면서 안도의 한숨을 몰아쉰다. 저녁식사 시간은 여유가 있다. 하루일을 마감하는, 그리고 내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차분하다. 아들과 같이 밥을 먹어서 그런지 얼굴에는 뿌듯함이 보인다. 이제 스무살이 훌쩍 넘어 보고 있기만 해도 든든한 것 같다. 설겆이하고 내일 아침에 끓일 콩나물을 다듬고 있다. 옆집 아주머니가 또 오셨다. 어머니에게 세상의 통로를 그 아주머니와 함께 찾는 듯 보인다.
  11시, 5월인데도 밤날씨는 스산하다.
  “어머니 이제 주무세요” “그래야지. 저기 소주하고 잔 좀 가져오너라.” “내가 저혈압이라 병원에서 소주 한잔 정도 하라더라. 조금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들과 어머니는 한잔씩 기울인다. 오늘은 취재 핑계로 친구집에 놀러온(?) 기자와 함께… 그 동안 세상살이가 줄줄 흐른다. “어머니, 피곤하실텐데 주무세요.” 말이 없으시다. 고개만 끄덕일뿐이다.

 글 이제원ㆍ그림 조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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