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행복=나의 행복

  그날은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한 동생이 1년에 한 번 있는 휴가를 나오는 날이었다. 원래 마음이 약하시고 눈물이 많은 분이시라 어린 동생을 외지에 보내고 항상 마음 아파 하시던 중 몇달만에 휴가 나오는 동생을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는 터였다. 아버님, 어머님, 나, 남동생 이렇게 단촐한 가족이기 때문에 동생을 보내고 난 후의 집안에서의 빈자리는 무척이나 크게 다가왔다. 빨리 들어오라는 어머님의 소리를 뒤로 현관을 나서면서 알았으니 그만좀 볶으시라고 소리를 꽥 지르고 나왔다. 그러나 곧, 오죽이나 내가 집안일에 무심했으면 저러실까란 생각에 새삼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올해로 대학 3학년째이다. 야한 영화를 주민등록증을 당당히 제시하면서 볼 수도 있는 어엿한 성년이다. 나름대로 다 컸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내 인생은 내가 개척한다는 의지로 살고 있었다. 내가 하는 학교에서의 일, 또는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 등을 부모님이 이해해 주실리 없다. 아니 들으려고도 하지 않으실꺼다란 생각으로 나는 나대로,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그렇게 살았다.
  특히 작년에는 과 부학생회장을 하면서 학과 공부 외에 학생회 관련 사업 때문에 집에 늦는 일이 잦앚다. 가끔은 어쩔 수 없이 술 냄새를 풍기기도 하고, 체육대회나 대동제 등이 다가오면 학교에서 밤을 새운 적도 있다. 나는 나대로 바쁜 일정속에서 사람들, 일, 학과 공부에 치이고 앞만을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 생활속에서 자연적으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적어지고 어쩌다 집에서 보낸다고 하더라도 내 방에만 틀어박혀 책을 읽거나 휴식을 취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니 당연히 그런 나의 모습속에서 부모님은 왠지 모를 소외감을 느끼셨고 그만큼 서로의 벽은 높아만 갔다. 대학 초년생일때는 윽박지르시며 혼이라도 내셨는데 어느덧 지금은 아예 포기한 모습을 보이시기까지 한다. 특히 하나뿐인 남동생을 서울로 보내고 나서의 집안은 더욱 조용해졌고 그 집안의 분위기 만큼이나 부모님도, 나도 모두 대화가 단절된 채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한 날들이 계속되는 가운데 동생의 휴가를 계기로 정말, 오래간만에 온가족이 식탁에 둘러 앉았다. 공무원 같은, 조금은 고지식한 아버님께서 왠일인지 평소 같으면 어림도 없던 술을 한잔 따라 주셨다. 왠지 모르게 코끝이 찡해 오는 감동을 느끼면서 어쩌면, 정말이지 어쩌면 부모님이 내가 하고자 하는, 현재 내가 하는 일들을 이해해 주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가졌다. 그래서 조심스레 내 얘기를 시작했다. 혼이 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말이다.
  고개를 숙이고 내 말을 다 듣고 나신 아버님께서 조금은 힘 있는 목소리로, 조금은 이제라도 얘기해줘서 고맙다는 다행스런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자신을 갖고 최선을 다하면 되는거다, 난 너의 영원한 지지자가 되어 줄꺼야”라면서 “이젠 니 인생은 니가 책임질 나이다”라고 말이다.
  흔히들 “공무원 같은…”이란 말들을 한다. 정말 우리 아버님은 공무원 같은 공무원이시다. 그래서 조금은 고지식하기까지 한 그런 분이시다. 은근슬쩍 약간 세련된 진보적인 친구들 아버님을 보면 너무나도 보수적인 아버지가 불만스러울때도 있었다. 그러나 조금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아버님에게 나의 모습은 그저 어리광만을 떠는 아직 철없는 어린애에 불과했을 것이다. 많은 액수의 등록금을 대시랴, 다 컸다면서 말도 제대로 하지 않으려고 하는 자식 뒷바라지 하시랴,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하시는 아버님께, 먼저 일어나 아침인사는 커녕 눈 비비며 일어나 “안녕히 다녀오세요”라고 말한적도 없다. 나를 이해해 주기만을 바랬지 내가 먼저 부모님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기억이 없다.
  세계에서 가장 사망률이 높다는 40대를 넘어, 머리 희끗희끗한 50대의 아버님. 큰소리 한번 안내고 속으로 온갖 마음 고생 다하시며 인고의 세월을 살아오신 어머님… 말씀은 안하셔도 이제야 알 것 같다. 어렸을때부터 아버님보단 엄마하고 더 마음을 잘 터 놓았다.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친구같은 사이라고나 할까? 중ㆍ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을 가서는 며칠만 엄마를 보지 못해도 보고싶어하고 그랬던 기억이 있다. 그랬던 내가 이렇게 다 커서는 마음 고생을 하시게 만들고 있다.
  어떤 후배가 세상에 가장 존경하는 분이 누구냐고 물은 적이 있다. 아마도 후배는 위인이나, 유명인사라 불리는 사람을 기대했나 보다. 그러나 난 서슴치 않고 대답했다.
  우리 어머님이라고…
  내일 모레면 어버이 날이다. 그저 매년 찾아오는 횟수적인 날이라면서 무시하지 말고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이라도 해서 단 하루라도 기분 좋아하시는 부모님의 얼굴을 뵙고 싶다.
  오직 자식의 행복이 당신들의 행복인 분들께 부모님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임을 다시한번 느끼며 결코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최영연(회계ㆍ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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