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학생 첫 공동 연대집회

  전국을 분신으로 몰았던 4월의 기운은 통일의 열기로 이어져 더욱 뜨겁다. 지난 27일 우리학교에서는 4월 열사 추모대회 및 자주, 평화, 전민족대단결을 실현하기 위한 조국통일 범민족 청년학생연합(이하 범청학련) 결의대회가 있었다.
  이번 결의 대회는 광주학살의 원흉인 미국을 반대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이행하기 위한 뜨거운 몸부림이었다. 최근 한반도의 정세는 4자회담이 제의되고 북미관계가 개선되는 등 평화협정체결과 더불어 통일에 유리한 국면을 보이고 있다. 충분히 민족적으로 뭉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지난 쌀협상과 경수로 협상타결시, 모처럼의 호재를 악재로 만들어버린 과거의 경험을 떠올려 볼 때, 경색되었던 남북간의 관계를 개선하는 몫은 정부를 비롯한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결의대회의 의의를 몇가지 찾을 수 있다.
  우선, 이번 결의 대회는 역사적으로 뜨거웠던 통일의 열기를 계승하는 집회였다. 89년 8월 통일의 꽃 임수경양과 문익환 목사의 방북으로 가속화된 통일의 물꼬는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두고 끊임없이 고민하던 그 당시 세대들에게 희망찬 설레임과 가능성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열의를 구체적으로 계승한 것이 ‘조국의 평화와 자주실현을 위한 조국통일 위원회(이하 조통위)’였다. 그러나, 90년 당시 통일 운동이 감상적이라는 평가와 오류속에서 대학, 과마다 편지교환투쟁, 이북학우초청, 자매결연, 이산 가족 찾기사업이 남한 학우로만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고 남북이 철저히 결합할 수 있는 형태로 결성하게 된 것이 범청학련이었다.
  범청학련은 자주와 평화, 민족대단결을 조국통일의 3대 강령으로 설정하고 활발히 활동했으나, 언제나 정부의 가장 큰 탄압대상이었다. 이번 집회에서도 학교밖으로 진출하려던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우리학교 전재형(체교ㆍ4)군이 전경이 던진 돌에 이마가 크게 찢어져 병원으로 수송되는 등 30명 부상자가 발생했다. 막대한 공권력의 투입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게 싸운 이번 집회는 역대의 이러한 기조를 잇고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뜨거운 몸부림이었다.
  둘째로 충청총련과 자강도, 양강도와의 첫 공동 연대 집회라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분단 반세기가 현실화된 현재, 이번 집회에서는 범청학련을 계기로 상호간에 서신이 교환되었고 공동연대의 뜻을 밝히는 결의문도 낭독되었다. 이러한 서신교류는 조통위가 민족대단결을 도모하기 위해 추진하는 자매결연, 편지교환, 이산가족찾기의 일환이다.
  정부의 일방적인 통일 주도 방식보다 민간교류를 통해 서로의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장벽을 뛰어넘는 대화가 우선될 때, 진정한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집회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측에서 보내온 서신에서 노수석학우를 죽게 만든 정부의 강경진압을 규탄하며 노수석학우를 김일성종합대학교 법학부 2학년 명예학생으로 추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남북학생간의 의견일치를 도출할 수 있다. 비록, 조국의 허리가 잘려진 상황이지만, 남북학생들이 분단에 대해 아파하고 숨진 노수석학수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이 동일하다는 남북학생의 하나된 마음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북한관련 전문가들은 평화협정체결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남북간의 신뢰를 구축하고 군사 긴장을 완화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조문 파동을 비롯하여 최근까지 팀스피리트훈련을 방불케하는 강화된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한반도에 긴장국면을 조성해왔다. 또, 보도에 의하면, 악화된 식량난으로 현재 김일성종합대학에 휴교령까지 내려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동포로서 손내밀기보다 북한 붕괴설과 남침설을 유포하는 모습을 보여왔을 뿐이다.
  분단반세기가 현실화된 지금, 이러한 경색된 분위기를 해소하고 신뢰를 쌓는 것이 통일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일 것이다.

김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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