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입’을 묶은 문민정부의 감옥

  “내가 어떤 주제에 대해 글을 쓸 것인가에 대해, 심지어 노트를 작성하거나 출판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개인적인 글을 쓰는데도 나는 먼저 내가 쓰려는 주제를 신고하고, 교도당국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집필할 주제를 알리면 법무부에서 검토를 하고 나서 교도당국이 종이를 줬다. 완성된 글은 교도당국에 의해 검열되었다.”
  지난해 6월 한국을 방문한 아비드 후사인 의사표현에 관한 유엔인권위원회 특별보고관이 황석영(52)씨를 면담한 뒤 한국에 관한 보고서에 언급한 내용이다. 그의 ‘한국 보고서’는 지난 4월 9일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정식발표된 후 결의문으로 통과됐다.
  ‘문학의 해’, ‘근대문학백년관건립’, ‘한국근대문학백년 CD-ROM제작’ 등 요란한 구호속에서 별로 주목받지도 못하고 있는 한국의 구속문인 한명의 실태가 특별보고관에 의해 전세계에 전해진 것이다. 여기에는 93년 ‘장길산’개정판 서문과 관련해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으로만 떠돌던 이야기도 함께 실렸다. 황씨는 편지형식의 서문을 3번이나 다시 쓰고서야 2장의 엽서 중 1장의 공간만을 사용할 수 있었다.
  ‘문학의 해’에 한국의 교도소가 황석영에게 허용하는 집필권이란 이런 것이다. “…결국 나는 이런 상황에서는 글을 전혀 쓰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우리시대의 대표적인 이야기꾼 황석영에게 이렇게 ‘글을 쓰지 않겠다’는 사실상의 ‘절필선언’을 하게 만든 것이다. 결국 가능한 것은 머리속으로 구상하는 것일 뿐이다. 어찌 황석영씨 뿐이겠는가. 광부시인 박영희(32), 노동자시인 박노해(38)까지 아직 세명의 문인이 ‘사실상’ 입이 묶인 채 감옥에 있다.
  92년 1월 4일 안기부에 연행돼 잠입탈출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돼 15년형을 선고받은 박영희씨는 1962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서울과 부산 등지를 전전하며 구두닦이, 신문배달원, 탄광노동자로 일했다. 그는 광부사의 뿌리를 찾겠다고 ‘일제광부징용사’를 집필하기 위해 시작했고 이런 노력은 그 해 한국방송공사에서 그의 취재기를 방영함으로써 한차례 결실을 거뒀다. 다른 한편 그의 이런 생각을 시작품에도 이어져 ‘해뜨는 검은땅’ 이라는 창작시집을 발표하기도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일제광부징용사를 취재하기 위해 일본을 찾았고 북한까지 건너가 일제시대 광산노동자들의 삶을 온전하게 복원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는 92년 162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공소장으로 기소돼 15년형을 선고받은 채 전주교도소에 복역중이다. 이후 그의 시는 세상에 나온 적이 없다. 여기에 더해 그는 탄광촌에서 만난 아내와도 헤어지는 개인적인 고통까지 감내하고 있다. 구속된 세명의 문인 가운데 가장 알려지지 않은 그는, 천주교 인권위원회가 5월에 ‘박노해후원위원회’를 결성함으로써 아직까지 후원회 하나 없는 유일한 구속문인으로 남게 됐다.
  또 한사람의 구속문인으로 경주교도소에 복역하고 있는 노동자시인 박노해씨. 지난 90년 3월 안기부에 연행된 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박씨에게도 이런 규제는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그는 올해 3월 중순 반가운 소식 하나를 보냈다. ‘창작과 비평’ 봄호에 구금된 박시인의 시 다섯 편(새벽별 등)이 실린 것이다. 그러나 시가 실리게 된 과정은 근대문학백년을 맞은 한국의 문학인들에게는 너무나 불쾌한 것이었다. 그는 감옥에서 시를 쓰지 못했다. 혼자 머리속에 다듬고 다듬은 시들을 면회온 사람들에게 구술하고 면회온 사람은 그걸 짧은 면회시간에 서둘러 받아적었다. 이렇게 어렵게 바깥의 독자들과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근대문학 1백년의 연륜을 쌓았다는 한국. 94년 행형법이 개정돼 집필권이 허용됐다는 한국의 감옥은 그러나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철저히 규제한다. 그 안의 문인들은 사실상 집필권을 거부당한 채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는 셈이다. 이들에 대한 석방촉구는 커녕 자유로운 집필에 관해서 성명서 하나 내지 못한 채 ‘문학의 해’ 몇달을 보낸 문인들은 침울하기 짝이 없다. 그들이 석방돼 마땅한 시기가 됐지만 석방은 커녕 글조차도 제대로 쓰지 못하게 해 이중의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들을 그대로 두는 건 한국문학의 큰 손실이다. 억압적이고 모순적인 현실에 저항하는 것이 문학의 임무라고 한다. 분단모순이 존재하는 현실에 저항한 이들은 아직도 감옥에 있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과 소설가는 감옥이라는 폐쇄된 공간에 ‘몸’이 묶이고 보이지 않는 규제에 ‘입’이 묶인 상태다. 이렇게 우리 문학은 중단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바로세우기’라는 용어가 여기저기 사용되고 ‘문학의 해’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이 시점에 그들을 그대로 두고 문민정부는 과거 군부독재와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송현순<한겨레21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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