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항상 거기 있다”

  저마다 그날이 그날같이 살아간다. 무슨 소리인가?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모든 길은 초행이 아닌가? 그렇다. 껌껌하게 바라보고 촘촘하게 말하는 그대를 존중한다. 어떻게 어제와 같은 오늘이 있겠는가! 그러나 저마다 움직인 운동한계는 있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중에 ‘달팽이’란 노래가 있다. 그 노래를 되풀이 해 듣고 있노라면 ‘기억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가는 달팽이 보다는 ‘모두 잊게 모두 잊게 해 줄 바다를 건너’는 내가 있다. 나만이 그러할까? 늘 가까이 있으나 만질 수 없는, 그래서 안타깝기 보다는 오히려 편안하고 의지가 되는 왕은 늘 거기쯤 있다.
  그날이 그날같은 통속적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는 ‘내게 그 인물을 존경하면 그 인물은 존경받을 만한’ 거리에서 존재한다. 신비는 거기에 있다. 만약 그가 우리와 같이 호흡하고 함께 뒹굴며 생활했다면, 그의 신비는 무차별하게 폭락됐을 것이다. ‘예언자가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는 어릴때 함께 고추를 달랑거린 친구며 친척이 있기 때문이’듯
  그를 깎아 내리려고 애쓰는 사람중에는 폭군으로, 성도착자로 매도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신비는 남는다. 눈만 뜨면 서릿발같은 신하들의 눈매와 백성들의 울분과 국가와 국가간의 암투를 몸으로 삼켜내는 그와, 제가족 챙기기를 우선 접어두는 그를 어떻게 같은 자리에 놓을 수 있단 말인가! 역지사지에도 한계는 있는 것이다.
  봉건의 시대는 가고 권력구조는 밖으로 돌출된다. 우리가 못보는 것은 무관심이 반이고, 나머지 반을 감추는 기술이 고도화 되었기 때문이다. “그 시대를 지배한 인물에 어떻게든 끈을 대고 싶어하는 충동을 억제하기란 어렵고 고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 권력을 피하기 위해서건 그것에 흡수되기 위해서건 또는 그 권력을 몰아내기 위해서건 간에 권력구조를 알아내려고 하는 노력은 의무감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작가는 추상적이기 한량없는 물음에 대답하려 공간을 제한한다. 그 공간은 우리가 애틋하고 정감있게 추억하는, 나이들수록 향수병에 젖게 하는 고향이다. 작가는 고향을 고향이라 차마 부르지 못하고(소설중에 작가는 한번도 고향이라 말하지 않는다) 건조하고 행정적인 ‘지역’이라 명명한다. 그 지역은 ‘이방인을 바라보듯이 나를 물끄러미 넘겨 보고’ ‘손님에게 취조하는 듯한 무례한 질문’을 하는 특색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곳에서 나는 “앞으로 그가 겪을 일은 그의 몫이다. 나는 간섭할 수도 없고 간섭해서도 안된다.”는 역사가의 눈으로 권력의 변화양태를 지켜본다.
  사건은 내가 ‘지역의 태양과 같은 존재’ 마사오의 죽음 소식을 친구 박재천에게 전해 듣고 지역으로 돌아오면서 일어나는 일과 추억이 엉키며 시작된다. 지역으로 돌아온 나는 이미 죽은 창용과 황포, 대경, 재천의 암투를 알게 된다. 우연한 기회에 박재천이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역사가의 눈을 가진 나는 모르는 채 도시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뛰어난 모사가인 재천에게 이용당하게 되고, 마침내 박재천이 ‘지역의 태양과 같은 존재’로 등극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읽거나 영화로 본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엄석대의 몰락을 보고 성급하게 권력의 무상함을 얘기한, 웅변한 사람 또는 적지 않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권력은 그렇게 뿌리뽑히고, 정의로운 사회에서 기생하는 정도로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문열은 엄석대를 내세워 단절을 얘기했다. 그러나 ‘왕을 찾아서’의 작가 성석재는 마사오를 따랐고,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받은 창용, 황포, 재천을 통해 끈끈히 살아남는 권력을 보여준다. 다만 변형이 있을 뿐이다. 태양은 항상 거기있다. 태양은 우리 주위에 가득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럼 아무것도 없단 말인가! 작가는 해결 방법을 말하지 못한다. 왜? 그는 역사가이기 때문에. 작가는 한가닥 실을 잡고 엉킨 실타래를 풀려한다.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망원경만이라도 밝고 어두운 세상 모두에게 공평하게 설치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조심 조심 혼잣말처럼 얘기한다.

 박상철(해양ㆍ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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