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나르는 목수의 수레바퀴

  마당극은 탈춤연희의 형식과 특성을 빌었으나 전통극 원형의 박제상태문화로 두지 않고 사회의 발전과 역사의 진보, 민족ㆍ민중의 건강한 생명력이 발휘될 수 있는 삶의 무기로써 발전시킨 연극 연희의 새로운 양식이다.
  이러한 마당극을 매개로 90년 창단이래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오던 대전지역 놀이패 ‘우금치’가 4월 24일 우송예술회관에서 새 마당극 ‘팔자’를 공연했다. 창단초기 ‘호미풀이’와 ‘아줌마 만세’로 농민문제를 다루다가 94년 갑오농민전쟁 백주년 기념극 ‘우리동네 갑오년’ 이후로 역사문제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하고, 지난해 ‘땅풀이’로 한국현대사에서 해방과 일제청산의 문제를 다루어 큰 호응을 얻은 우금치가 민족 최대의 비극이었던 6ㆍ25와 한반도의 분단현실을 ‘팔자’라는 마당극에 담아 올리게 된 것이다.
  두용총각과 지설처녀의 설화를 간직한 두지리는 해방 후 마을총각 종구와 처녀 옥분의 결혼준비로 술렁인다. 그러나 결혼을 앞둔 채 6ㆍ25전쟁이 터지고 종구는 인민군부역의 죄로 웃마을 사람들과 함께 총살당한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몇몇 노인을 제외하고 한 세대가 바뀌나 6ㆍ25로 깊어진 아랫마을과 웃마을의 대립과 갈등은 더욱 깊어진다. 그러나 가뭄을 일으킨 생수공장에 마을사람들이 공동대처하면서 두 마을은 곧 화해하게 되고 두용과 지설의 영혼 혼례식을 치루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역시 우금치다. 6ㆍ25와 분단ㆍ통일 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한 마을의 이야기에 대입시키고 그 마을 사람들의 대립과 인생유전을 통해 마당판에 회화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물론 대본의 한계는 느껴진다. 내용 전개의 느슨함이 있고 반동인물의 역할 미약으로 극 전체 분위기의 팽팽함을 상실하고 있다. 게다가 갈등의 해소요인으로 외부의 생수공장을 끌여들였다는 점 또한 흠이라면 흠이다. 그러나 인물들의 세대역할이 극중에서 계속 변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맥으로 인물의 성격을 견지해내는 탄탄한 연출력과 극이 진행되는 동안 꼼짝없이 사람을 웃고 울게 만드는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력, 그리고 모내기 장면을 녹색천을 펼쳐 나가는 춤으로 형상화해내는 등의 마당극 기교등은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극이 시작되던 첫 부분, 마을사람들이 풍물패로 치장하고 나와 두용, 지설 설화를 전하며 꽃잎 몇개와 휘파람만으로 완벽한 전설의 공간을 만들때 사람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으며 연신 ‘최고’를 외쳤다. 그리고 종구와 마을 사람들이 총살당할 때엔 그 위압하는 침묵속에서 같이 섬뜩해 했고, 운명에 의해 원수를 아버지로 모시고 살던 이가 친삼촌을 만나 흐느낄 땐 여기저기에서 같이 울었다.
  각 개인의 삶과 역사적 정황의 배합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실랄하게 보여주고 또 신명나게 풀어내는 마당극의 맛. 그중에 우금치 마당극의 맛. 단순한 눈요깃거리를 제공하고 잠깐의 웃음만을 전하는, 보기만 좋은 ‘장인의 목각공예품’이 아니라, 진정 시대의 아픔을 몸으로 표현하고 힘있게 끌어안는 ‘목수의 수레바퀴’인 것이다.

오창학(국문ㆍ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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