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오해의 교훈

  살다보면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다른 이들이 자신을 판단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린 이런 경우를 오해라고 부를 것이다. 일반적으로 오해라고 하면 부정적인 오해만 생각하기 쉬운데, 오히려 좋은 쪽으로의 오해도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버스를 타고 집에 가다가 내릴 때가 다 되어, 일어섰더니 할머니께서 마침 타셔서, 그럴 필요없다느니, 고맙다고 말한다든지가 그런 예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정적인 오해는 깨뜨릴려고 애쓰고, 긍정적인 오해는 계속 유지하려 한다. 그리고, 언젠가 긍정적인 오해가 부정적인 오해로 바뀔 두려움에 조심하게 될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자신이 사랑한다면, 어떤 긍정적ㆍ부정적 오해든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긍정적 오해들은 그렇다치고, 부정적 오해들은 그 오해를 산 행동이나 말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 그저 묵묵히 담담하게 소신있게 사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금방을 아닐지라도 자신의 본질과는 다른 모습들은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 보이며, 오해한 이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될 것 이다. 너무 조급해 하지 말고, 묵묵히 소신있게 밀고 나가는 것이 어떨까? 그리고, 이런 모습들은 너무 쉽게 변절하는 오늘날의 정치인들에게 어느정도, 아니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남      이성용(관현악ㆍ2)

 

오해의 대가

  삶에 있어서 오해란 단어도 가끔은 필요한 걸까? 오해는 살다 보면 늘 만나는 흔한 일인 것 같다.
  중학교 때 일이다.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았는데 너무 피곤해서 졸고 있는 사이에 호통소리가 들려 눈을 들었다.
  그랬더니, 앞에 대쪽같은 할아버지가 서서 동방예의지국에서 예의가 없고 젊은 것이 어른 공경할 줄을 모른다면서 고래고래 역정을 내시는 거다.
  할아버지는 아마 나를 지켜 보시다가 자리양보하는 것을 피하려고 일부러 조는 척 한걸로 오해 하셨나 보다. 자다가 일어나 그렇게 꾸중을 듣다보니 사람들 앞에서 무안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사소한 오해는 가끔 사람의 심증을 상하게도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많은 것 같다.
  6년간 나와 신뢰를 쌓아온 친구와 다툰 기억도 난다. 그 친구를 위해서 내가 취한 행동이 그에게는 그와의 신의를 저버린 행동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서로를 향해 있던 깊은 이해와 애정이 오히려 작은 오해에 큰 댓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 오해의 결론은 더 깊은 애정으로 귀결되었다. 그가 오해한 나의 진심어린 동기를 헤아렸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살면서 항상 일어나기 마련인 오해는 더 깊은 이해와 연루되어 삶의 한 현상을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여      남보이(영문ㆍ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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