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바보인가?

 후기 산업사회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 20세기, 그 종착점에서 나타나는 인간성의 상실, 황폐해진 문명, 물질만능속에서 당신은 과연 어떻게 살고 있는가? 착하게, 정직하게, 곧이 곧대로 세상을 믿으며? 아니면 타인을 밟더라도 나의 미래, 이익만은 챙기며 살고 있진 않은가?
 이제는 더 이상 착하기만 한 사람은 원치 않는 요즘, 연극 ‘달팽이 뿔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관객들에게 이런 화두를 던지고 있다.
 신문 하단에 매일 나오는 짤막한 기사들 - 백화점이 무너지고, 유산상속 때문에 형제간에 칼부림이 일어나고, 사이비종교에 빠져 가족과 재산을 탕진한 사람들. 거대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돌출된, 어쩌면 황당하기까지 한 사건들에서 이 연극은 출발했다.
 어느 도시의 변두리 쓰레기 매립장 주인인 배사장은 땅과 돈에 대한 욕심이 매우 강한 사람으로 땅을 한평 두평 늘려가는 재미에
 (일체의 가식과 관념이 필요치 않은 바보 기란이 흘러 들어오고, 기란과 숙자는 곧 마음의 교감을 느끼며 사랑하게 된다. 때묻지 않은 순수한 기란과 숙자의 사랑은 기란과 숙자의 사랑은 옥진과 영춘의 계산적이고 왜곡된 사랑의 유희와 비교하며 더 큰 빛을 발한다.)
-살아온 사람이다 그에겐 불량기가 농후하고 아버지의 재산을 노리고 있는 옥진과 착하지만 선천적인 바보인 숙자라는 두 딸이 있다. 또한 사이비 종교의 광신도인 할멈과 배사장의 재산을 노려 옥진과 결혼하려는 영춘, 강간사건으로 수배중인 떡봉이 같이 살고있다.
 여기에 일체의 가식과 관념이 필요치 않은 바보 기란이 흘러 들어오고, 기란과 숙자는 곧 마음의 교감을 느끼며 사랑하게 된다. 때묻지 않은 순수한 기란과 숙자의 사랑은 옥진과 영춘의 계산적이고 왜곡된 사랑(?)의 유희와 비교하며 더 큰 빛을 발한다.
 배사장은 시에서 매립장터에 농수산물 유통센터를 만들 계획이라며 다가온 하달근의 꼬임에 넘어가, 여기저기서 돈을 꿔 3억의 기부금을 그의 손에 쥐어준다. 그 개발계획을 눈치챈 옥진은 재산을 혼자 차지하기 위해, 영춘ㆍ떡봉과 함께 숙자를 없앨 음모를 꾸민다.
 결국 떡봉에게 무참하게 강간당한 채 방에 갖혀 버린 숙자. 애가 어떻게 생기는 지도 모르는 숙자에게 기란은 사랑을 하면 아기가 생긴다고 말하며 바로 우리의 아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뱃속의 아이마저 옥진의 음모에 의해 지워버리고 만다.
 너무나 답답한 세상. 왜 이럴 수밖에 없는지, 그들은 이다지도 양심이 없는가 하는 생각을 하며 관람 내내 답답함을 느꼈다.
 원래 심장이 약해 약을 먹던 배사장은 하달근이 토지사기단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쓰러지고 만다. 옥진은 남은 돈을 훔쳐 영춘과 달아나려하다 떡봉에게 들킨다. 떡봉과 영춘사이에서 칼부림이 일어나며 결국 모두 다치고 만다.
 이런것들이 단지 연극속에서만 있는 사실이라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이것들 모두 사실이고 현실인 것을...
 모두 파멸에 빠진 후, 기란과 숙자는 바다에 가보고 싶다던 숙자의 소원에 따라 기란의 고향인 섬으로 간다. 기란의 소년시절을 보낸 등대앞에서 지나가는 배에 손을 흔들며 끝이 난다.
 이 연극이 문명과 인간에 대한 경보를 보내는 것은 확실하나 인류의 미래를 속단하지는 않는다. 연출을 맡은 권호웅<극단 아리랑 단원>씨는 끝내 포기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신뢰가 그 절망속에서 한 줄기 희미한 빛을 던진다며 그 빛을 소개하고 싶다고 말한다.

 (기란이 손인형을 조종하면서 펼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우리들이 사소하고 보잘것 없음으로 팽개쳐 버린 것들이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었나를 보여주며 참다운 인간성 회복의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가 평소에 괄시해버리는 사람들. 무표정과 무반응의 신호와 몸짓을 던지는 바보 둘에게 극중 인물은 물론 관객들까지 뒤통수를 얻어맞고 말았다.
  특히, 기란이 손인형을 조종하면서 펼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우리들이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것으로 팽개쳐 버린 것들이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었나를 보여주며 참다운 인간성 회복의 메시지를 던진다.
 극중 사이사이 등장하는 거미인간은 인간세상의 배설구에 살고 있는, 급속한 발전과 물질문명에 찌들은 기형인간들을 상징한다. 한역도 제대로 하기 힘든데 1인 3역씩 맡은 조연의 연기가 매우 돋보였다. 괴성과 함께 역동적인 동작으로 표현한 거미인간의 춤, 광신도들의 집회에서 보여준 것은 매우 참신했고, 연극의 주제를 부각함에 있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TV나 영화와 다른 연극만의 고유한 특성이다.
 ‘달팽이뿔...’은 내용 뿐 아니라 기획성과 연출, 소품, 음향 또한 매우 돋보인 연극이었다. 외국번역극이 범람하는 연극계에,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나타낸 보기드문 완성도 높은 창작극이다. 올해 10년을 맞은 극단 아리랑은 86년 창단 공연‘아리랑’을 시작으로 김명곤, 방은진, 최종원등 유명한 배우가 거쳐간 극단이다. 작년에는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로 제19회 서울연극제 ‘현대 연극상’ 최우수작품상, 연출상, 연기대상까지 수상한바 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0년, 지난 10년간이 이들의 창작 활동이 씨를 뿌리는 시기였다면, 이제는 연극 각 분야의 전문성을 구체화하는 단계로, 바야흐로 21세기의 문화예술적 전망을 제시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달팽이뿔...’은 내용 뿐 아니라 기획성과 연출, 소품, 음향 또한 매우 돋보인 연극이었다. 외국번역극이 범람하는 연극계에,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나타낸 보기드문 완성도 높은 창작극이다)

 ‘달팽이뿔...’의 극본을 쓴 작가 손영호씨는 우리에게 가장 소박하고 평범한 것에서부터 희망과 신뢰를 회복하자고 말한다. 아름다운 인간, 아름다운 세상은 정녕 소박하고 정직한 삶을 가진 이들의 몫이다.

박윤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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