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운명은 아무래도 개척자인가봐"

 지난 7월 중순 충남대 신문방송사 취재팀은 세계화 시대에 발맞추어 해외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동문들을 취재하기 위해 11박 12일 일정으로 미국 서부지역을 다녀왔다. 앞으로 8회에 걸쳐 그들의 치열했던 삶과 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할 것이다. 첫 번째 만남,

 “요즘도 충대 상징이 백마인가? 그 이름 내가 지은거야” 13대 총학생회 회장이었다는 말로 기자를 깜짝 놀라게 한 이병도 동문.  “그때 내 멋대로 짓고 넘겼는데 그걸 그대로 쓰고 있다니, 발전이 별로 없었네(웃음)”
 그의 대학시절은 시민운동 1세대라 자부할 수 있는 70년대, 그에게 학생운동은 옵션이었고 71년부터 시작한 흥사단 활동은 졸업이후 타국인 미국에서도 회장을 맡을 만큼 그에게 단단한 민족운동의 뿌리가 됐다. 이렇듯 다부진 그에게는 적재적소라는 말대로 리더의 역할만 주어졌다.
 “행정학과 1회 졸업, 그때부터 지금까지 어딜 가나 나는 선배가 없더라고.” 미국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도 모든 일을 자신이 개척해 나갔던 이병도 동문은 이 점을 서글프게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개척자의 운명인 것 같다”며 후배를 끌어줄 수 있다는 점을 뿌듯해하고 즐기는 사람이다. 아마 미국에서 동문을 찾을 수 없어 충청 향후회를 설립했던 힘도 뒤에 올 사람을 생각하는 그 개척자의 열정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나는 돈을 만지는 사람,  그것도 큰 돈
 이병도 회장은 삼성그룹, 쌍용투자증권, 프루덴셜, 아이뱅크 등의 투자전문기업을 거치면서 끝내 한국인으론 보기 드물게 미국 금융계 주류로 당당히 진입, 현재 ‘Mass Mutual’의 펀드 매니저이며 아시아 마켓을 다루는 총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Mass Mutual’은 일반인들에게 주식을 발행하여 돈을 모아 증권투자를 하는 회사로 한국엔 보험 매니저만 존재하는 것에 비해 미국은 이병도 동문과 같은 주권매니저가 일반화 돼있다. 때문에 이런 한국과 미국의 금융환경 차이를 설명하고자 3년 째 한국일보 증권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단다.
 그가 지금 미국사회 주류가 되기까지 넘어야 했던 장벽은 언어와 문화적 충격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깨달음은 미국에서 한국과 거래하던 중 한국에 IMF가 터졌을 때다.
 “IMF로 인해 1년 동안 한국 교보생명에서 구조조정 일을 담당하면서 내 분야가 무서운 일이라는 걸 알았지. 돈 전쟁은 개인뿐 아니라 한 나라를 망하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실감했거든” 그가 말하는 자본시장은 ‘상어 떼’ 같은 것이다. 또한 상어 떼 속 그의 꿈은 한국에 ‘Mass Mutual‘ 현지 법인을 세우는 것. 그동안 한국에만 이 회사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아메리칸 드림? 코리안 드림!
 “생각해 보면 모순적이게도 시민운동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면서 하는 일은 경제, 사업 분야지. 하지만 나는 이런 방식으로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중도 통합 운동을 하는 중이야” 스스로를 ‘주의자’라고 소개한 이 동문은 좌우명이 대공(大公)주의, 대동(大同)주의, 대애(大愛)주의라며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을 빌려 설명했다. “이념과 사상을 초월하고, 크게 한 공동체를 이루고, 큰 사랑을 실천하는 것. 그게 내 삶의 목표지” 그래서 미국에 살고 있지만, 코리안 드림인 민족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힌다. 그래서 지금도 열심히 공부중인 이병도 동문. 지금은 공인회계사 시험인 ‘CPA’를 준비 중이라며 두꺼운 수험서를 꺼내 보인다.


 * 한 줄 인생평 

 “성공이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인생목표를 일찍, 크게 잡는 게 우선이다. 목표가 잡혔다면 그 꿈에 일가견 있는 사상가가 되어야 하고, 그것을 설파할 수 있는 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기적이 일어나고 세상이 변화된다. 이것이 바로 성공이 아니겠는가. 대학 4년에서 인생이 결판난다고 생각하고 부디 목표를 잡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길 후배들에게 바란다.

이정아기자 ayersrock@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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