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자 중심의 법은 법률 문화의 민주화

 

 복원공사가 한참인 광화문 앞을 돌아 방문객이라는 출입증을 목에 걸고 정부청사로 들어섰다. 홍보실을 지나 비서실에서 대기했다. 지난 달 법제처장으로 임명된 우리학교 남기명 동문은 그야말로 장관급 인사다. 그러다보니 선배님 얼굴 한 번 뵙기가 쉽지만은 않은데, 처장실로 들어서자 벽에 걸린 ‘治法爲人’이라는 큼직한 한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 이곳은 법령을 심사하는 법제처. 학교 안부부터 묻는 남기명 동문에게 기자는 도리어 법제처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Q. 법제처에서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을 추진하면서 ‘법령UCC’도 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법제처에 대한 간략한 소개, 근무하면서 느끼는 보람과 한계, 우리나라 법이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법제처는 각종 법령을 심사하는 정부입법 조정기관입니다. 지금은 누가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법률 용어와 표현을 정리하는 일에 힘을 기울이고 있지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법률의 단어는 한자가 유독 많습니다. 거기에는 일제 강점기의 흔적도 남아 있거든요. 게다가 규정이 애매모호해서 적용하기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현행 법률을 정리하는 작업을 반 이상 진행했으니 앞으로는 법을 친근하  게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밖에 공권력에 의해 침해된 국민의 권익을 구제하는 행정심판제도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보람이라면 이 행정심판제도 과정에서 느낄 수 있겠죠. 반면 국가 정책 수행을 위해 입법을 지원하는 기능을 담당하다보면 국민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 적다는 면에서 다소 한계를 느낍니다. 따라서 좋은 법이 되려면 입법과정에서부터 성별, 연령, 사회적 입장 등의 의견을 골고루 반영하는 절차를 확립해야겠지요. 나는 이런 수요자 중심의 입법과정을 법률문화의 민주화라고 봅니다.

 Q. 우리학교 법대 학생들은 매년 ‘모의법정’을 열고 있습니다. 학부시절 법대생으로서 대학생활은 어떻게 보내셨는지, 후배들에게 전해줄 법학 공부의 노하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모의법정’이 아니라 ‘모의재판’이라고 불렀습니다. 1학년 때 ‘모의재판’에 참여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주제는 ‘성춘향에 대한 변학도의 행동을 형법상 어떤 법을 적용해 판단할 수 있느냐’였을 거예요. 그땐 1학년이라 뭘 모르니 서기로 참여했었죠.
 대학시절 낮엔 놀고 해가 떨어질 때는 언덕에 모여앉아 일명 ‘고시 방법론’을 전수해 주던 선배와 인생에 관해 논하곤 했습니다. 술도 참 많이 마셨죠. 무지개라는 문학, 봉사동아리에서 홍성이며 영동으로 농촌연대활동도 많이 다녔습니다. 하루 종일 책만 펴고 있는 것보다는 ‘놀 땐 놀고 공부할 땐 공부하자’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법 공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법은 어찌 보면 형식적이라 주로 암기를 합니다. 하지만 암기에도 한계가 있죠. 법의 취지와 배경을 이해하고 판례에 적용해 현실적인 법이 되도록 공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군요. 예를 들어 교통편의 증진법이나 노인수발보험제도와 같이 소외된 이들에게 현실적 평등을 보장하는 법을 생각해냈으면 합니다.

 Q. 스승의 날을 맞아 인생에 있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스승님이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우선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열심히 공부하라고 손수 적어주신 한자성어가 생각납니다. ‘소년이노학난성’이니 ‘일촌광음불가경’이라.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짧은 시간도 가벼이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 한자성어를 대학에서 공부할 때 좌우명으로 삼아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후로 대학생활에서 기억에 남는 스승님으로는 헌법을 가르치셨던 권문택, 정종학 교수님 을 꼽고 싶습니다. 특히 정종학 교수님과의 첫 번째 강의 시간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충남대의 교수를 맡으면서 일부러 학교 근처로 거주지를 옮긴 분이셨습니다. 그 이유를 교수님은 “좋은 교사는 학교와 가까운 곳에 살면서 되도록 학생들과 가깝게 지내며 소통하는 사람이다”고 아버지께서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첫 강의 때 밝히셨던 분입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사는 곳도 일터와 멀지 않은 곳에 있답니다.

 Q. 마지막으로 개교 55주년을 맞아 동문으로서 충대신문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아무쪼록 지방거점 국립대학으로서 우리학교의 발전을 빕니다. 특히 학생들에게는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물론, 놀 때는 놀고 공부할 때는 확실히 공부하는 후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인터뷰가 끝난 뒤 최근 발행된 충대신문과 법대신문을 건네받은 남기명 동문은 자연스레 학교소식으로 눈을 돌린다. 학교 축제가 한창인 캠퍼스를 떠올리며 지금도 만나고 있는 친구들 이야기를 꺼낸다. 바쁜 와중이지만 “친구를 만나는 건 일이 아니라 그냥 놀려고 만나는거지”라는 남기명 동문에게 기자도 모르게 선배님이라는 호칭이 튀어 나온다.  이런 남기명 법제처장의 여유로운 마음이  진정 사람을 위하여 법을 다스리는 ‘치법위인’을 실현하는데 힘이되지 않을까.

글 - 이정아기자 ayersrock@cnu,ac,kr
사진 - 진희정기자 hjsw@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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