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학과 오용호군을 만나다

 간호사는 흔히 여성들의 직업이라 일컬어 왔다. 그러나 우리학교에 남자도 할 수 있다고 외치는 학우가 있다. 간호사를 꿈꾸는 오용호(간호·4)군을 만나본다.

 간호학과 청일점, 만인의 연인이 되다
 “간호학과에 온 남학생이라고 해서 절대 여성스러운 성격이 아니다”라는 오용호군이 공대에 갈 거라는 예상과 달리 간호학과를 지원한 것에 친구들은 놀랐다고 한다. 오군은 “어떤 일이든지 하나의 성에 편중돼 있는 직업은 없다”며 “간호사 또한 전문성 있는 직업이기에 남·녀 모두 도전해 볼 만한 일”이라고 말한다.
 간호학과에 입학한 6년 전, 부모님의 반대가 없었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간호사인 누나의 영향과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집에서 봉사를 선호하는 분위기라서 반대보단 오히려 지지했다”며 지금 자신의 결정에 만족한단다. 또한 간호사인 누나를 보면서 환자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건강해 질 수 있는 간호를 하고 싶었기에 고 3때 마음먹었다고 한다.
 간호학과에 입학할 당시 남학우는 오군 혼자였기에 농담반 진담반으로 “함부로 여자 친구를 사귀기 어려웠다”고 그는 과안에서 만인의 연인이었다고 한다. 지방에서 왔기에 학교에서 지내는 시간이 낯설었던 그는 “교수님과 여자 동기들이 신경을 많이 써주고 먼저 다가와 말도 걸어주며 편하게 대해줘서 고맙다”고 한다.
오군은 “입학하던 때보단 과에 남학생의 수가 늘었다”며 “아직 우리나라는 문화적·사회적인 요건이 남자 간호사로 일하기에 어려움이 있지만 도입부가 열렸다”는 것에 뿌듯하단다.

 의무병, 지금은 실습 중
 “군대에서 저는 에이스였어요”라며 쑥스러운 듯 웃는 오군. 보건 직 계열이 입대하는 의무병 중엔 간호학과 학생이 없었기에 상임 병들 사이에서 그는 에이스로 통했다.
 오군은 군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풀어간다. 어느 날 대대장 사모님이 아파 수액을 놓아야 하기에 대대장은 오군을 찾았다. “제가 위병소 근무라서 갈 수 없었기 때문에 무작위로 차출 된 고참이 바늘만 찔러 보다 왔대요” “결국 수액을 제대로 놓지 못해 혼나고 온 고참은 저를 혼냈죠”.
 얼마 후 오군이 수액을 직접 놓아야 할 상황이 왔다. 그러나 수액을 놓는 법은 알지만 놓아 본 적이 없었던 그였기에 “바늘로 찌르다 환자 팔에 멍만 들어 또 혼났다”며 웃는다. 간호학과 출신이라는 것만 믿고 고참들은 어린 그에게 많은 기대를 한 것이다. “지금은 잘 놓을 수 있다”며 그때 일을 떠올리는 그에게 군에서의 경험은 살아있는 실습이었다.
 
 간호는 나의 행복
 우리학교 간호학과는 충대병원으로 실습을 간다. 오군은 “11병동은 재활병동인데 사지마비 된 할아버지를 간호 한 적이 있다”고 말한다. 말도 잘 못하고 가족 외에는 반응도 없는 무뚝뚝한 할아버지의 물리치료를 돕는 것이 그의 몫이었다. “실습이 끝나는 날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할아버지께서 제 귀에 고맙다고 말했다”며 그 때 일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처럼 고맙다는 환자들의 한 마디는 그에게 ‘비타민’이다. 이처럼 오군은 “간호를 하는 자체가 커다란 행복”이란다.
 점점 노령화되고 있는 우리나라에 간호사의 손길은 더 많은 곳에서 필요로 한다. 오군은 이런 우리나라에서 “전문성을 유지하고 경쟁력을 키워 국민 건강권을 보장하고 보건 복지를 향상시킬 수 있는 간호사”, “국민건강권을 유지 향상 시킬 수 있는 정책에 도움이 되는 의료인이 되고 싶다”고 한다.

 오용호군은 마지막으로 “독수리가 되라”고 신입생들에게 말한다. “지금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말고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20대의 열정과 노력으로 하고픈 일을 쟁취하라는 것”이다. 그도 지금 20대의 열정으로 간호사라는 꿈에 한 발짝 다가서고 있다.


 

 

 

 

 

 

 

 

임지은기자 peterpan@cnu.ac.kr
사진- 진희정기자 swhj@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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