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 비보이. 전우진 학우와의 만남

 

 ‘대한민국이 세계 1등’. 우리나라 ‘B-boy, B-girl’들은 전 세계 춤꾼들의 교과서가 되어 새로운 문화코드로 자리 잡았다. 젊음의 또 다른 상징으로 등장한 이런 ‘비보이’가 우리학교에도 있다. 몸으로 말하는 언론정보학과 3학년 전우진 군, 그와의 인터뷰에 함께 해 보자. 

 난 몸으로 말 한다
 “고1때 주위 친구들이 춤에 관심이 많아 자연스레 춤을 접하게 됐다”면서 8년간의 댄스경력을 소개하는 그는 그저 춤이 좋은 학생이었다. 그러다 비보이가 되기로 결심한 건 우연히 미국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비보이 팀의 춤을 본 후. 그렇게 시작한 브레이크 댄스는 평소 조용했던 그의 성격까지 바뀌게 했고 춤에 대한 열정은 그를 대전에서 ‘통하는’ 비보이로 만들어 놓았다.
 “스무 살 때 서울 프로 비보이팀 연습생으로 있던 시기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나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준 기회”였단다. 그 때 “이미 세계최고수준에 있는 한국 브레이크 댄서들을 보며 하루 종일 춤 연습에 몰두했다”는 그는 이제 몸으로 말하는 춤꾼.

 쉘 위 댄스?
 한동안 연예기획사의 댄스 트레이너로도 활동한 그의 경력은 화려하다. 세계 대학생들의 올림픽이라고 여겨지는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대구에서 열린 2003년에도 그의 춤은 빛을 발했다. “대회 한 달 전에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알릴 공연 홍보팀을 모집했는데 우리학교 동아리 ‘입큰 개그리’ 학생들을 모아 춤을 가르쳐 출전했다”며 “대전 예선을 거쳐 본선에서 20여 개 팀 가운데 1등을 해 학교이름으로 대상을 탔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대구지역 뿐 아니라 전국으로 공연을 다닌 그의 경력은 같은 해 입대한 군에서도 이어진다.    
 이라크 파병부대에 선발된 그는 현지문화교류행사를 통해 머나먼 이국땅에서도 자신의 춤을 선보였다. “우리나라 전통무술이나 태권도 시범과 함께 브레이크 댄스를 보여줄 계기가 생겨 몇몇 군인들에게 춤을 가르쳐 6개월의 파병기간 중에도 두 달 정도는 춤을 췄다”.
 또한 지난 겨울방학엔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에서 브레이크 댄스를 가르쳤다.  “한국에서 온 비보이라는 말에 현지 사람들이 반겨주었다”며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선 우리나라 브레이크 댄스를 새삼 느끼고 온 그다.

 ‘북치기 박치기’ 비트에 맞춰
 “브레이크 댄스에 관심이 있고 배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오라”는 그의 말에 “하지만 아무나 하는 춤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라는 기자의 답이 이어지자 그는 “이게 문제”란다.
 “브레이크 댄스를 그저 돌고 구르면서 덤블링하는 고난이도 동작을 말하는 것으로 일반 사람들은 알고 있지만 그러한 기술적인 요소보다 음악적 구성이 더 중요한 춤이 바로 브레이크 댄스”라며 그 만의 생각을 풀어놓는다. “현란하게 구사하는 동작이 전부라고 여기면 그 춤은 누구도 못하는 것”이라며 “음악의 비트에 맞춰 스텝을 하나 하나 밟는 기본적인 것부터가 이 춤의 시작”이란다. 그가 생각하는 ‘춤‘이란 자신의 몸을 통해 음악을 표현하는 것. “그 중 브레이크 댄스는 인간의 동작 중 가장 화려하고 현란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클 뿐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비트박스’의 기본으로 통하는 ‘북치기 박치기’에 맞춰 자신을 표현해 보라. 그의 말대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춤“이다. “요즘 아주머니들이 브레이크 댄스를 접목해 에어로빅을 하듯이”.

 사진 찍는 비보이
 전보다 학교생활에 더 충실하고자 한다는 그는 현재 언론정보학과로 전과를 해 새로운 공부에 열심이다.
 가까운 미래에 대해 “전문 댄서도 좋지만 춤과 음악만큼이나 여행과 사진 찍는 걸 좋아해 여행사진 기자를 꿈꾸기도 한다”는 그는 사실 인터뷰 내내 자신의 카메라를 연신 만지작거린다. 기자의 카메라에도 관심을 보이던 그는 “춤을 추면서 이곳 저곳 여행을 많이 가게 됐고 그러다 보니 추억을 남기고 싶어 찍기 시작한 사진이 요즘은 부쩍 좋다”고 한다.
 또한 “브레이크 댄스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춤을 많이 가르쳐 주고 지금처럼 다양한 공연도 하고 싶다”며 브레이크 댄스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그의 바람도 드러낸다. “내가 생각해도 욕심이 많은 거 같다”며 이내 웃는 그는 아직도 꿈 많은 스물다섯.   

 춤을 추며 다친 ‘영광의 상처’를 보여주며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하는 브레이크 댄스를 꿈꾼다”는 그는 진정한 댄서가 아닐까.


사진/글 진희정기자 swhj@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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