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색할 수 없는 시대정신과 실험정신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우리나라 사람처럼 노래를 사랑하는 민족은 그리 흔치 않다. 거의 모든 모임과 놀이가 있을때, 노래를 빼면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을 정도로 좋아하고 즐겨부른다. 또한 노래는 2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다. 즉, 노동이나 공부를 하면서 노래를 듣거나 부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만큼 생활과 밀접하고 인간의 정서를 잘 대변해 준다. 노래는 우리네 일상속에 완전히 용해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대학가에서 불려지는 노래를 보면 대학생의 정서를 알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오는 10월 19일, 대학축제가 절정을 이루는 때에 제20회 대학가요제가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린다. 지난 77년에 시작되어 수많은 유행곡을 배출하고 스타들의 등용문이 되어 온 대학가요제가 20회를 맞아 ‘77학번부터 77년생까지’라는 캐치프레이즈하에 특집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대학가요제가 정말로 ‘대학생’의 정서와 생각을 올바로 대변해 주었는가라고 묻는다면 자신있게 ‘예스’라고 대답하긴 좀 망설여진다.
  대학가요제는 지난 70년대 말, 유신정권의 폭압속에 대중가요와 차별화된 노래로 올바른 대학문화를 배출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77년, ‘나 어떡해’란 곡으로 서울대 보컬그룹 ‘샌드페블즈’가 대상을 차지한 이후 신해철, 배철수, 노사연, 심수봉, 이정석, 유열 등 많은 가수들이 대학가요제를 통해 스타로 데뷔했다. 전성기였던 80년대 중반까지는 출전자체만으로도 소속 대학의 스타가 되었고, 대학가요제에 출전하기 위해 대학에 들어갔다는 학생이 있을 정도였다.
  ‘젊은 연인들’, ‘꿈의 대화’, ‘그때 그 사람’, ‘해야’등 히트곡이 나왔고 이 노래는 대학가뿐 아니라 중고생과 일반인들에게도 폭넓게 애창되었다고 한다. 이중 심수봉의 ‘그때 그사람’은 순위권안에 들지 못했지만 대학밖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10ㆍ26’과 연관돼 시대를 풍미하는 유행가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가요제가 대학생들의 가수등용문으로 이용되고, 레코드사에서 대학생 가수지망생을 발굴, 훈련시킨 뒤 대학가요제에 내보내 상품성을 증폭시키는 등 상업주의에 이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대학가요제의 출전곡들이 대학생다운 신선함과 실험성보다는 기성가수와 가요를 뺨치는 대중성에 치중되어 왔고 정작 캠퍼스에서 노래를 즐기는 대학생들에게는 외면받아 왔다.
  또한 94년, 전자업체인 아남전자에서 2천만원 상당의 장학금을 내걸고 ‘아남델타가요제’를 신설했었다. 그 당시 대학가요제가 끝난 10월 16일을 최종예선일로 잡아 대학가요제 탈락자들에게도 기회를 주었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미주지역예선까지 개최했다. 당시 재능있는 대학생들을 적극 지원, 우리음악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생겼었다. 결국 94년, 주철환 PD가 대학가요제의 연출을 맡으면서 대학가요제의 상업성을 타파하고 대학인의 의식과 문화가 살아있는 ‘노래울림터’로 만들겠다며 새로운 변신을 시도했다.
  먼저 출전자 중 가수지망생은 사양하고 아무리 가창력이 좋아도 기성가요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노래는 배격한다고 했다. 그리고 김민기, 양희은에서부터 80년대 노래를 찾는 사람들, 그리고 9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대학가요사’를 다큐멘터리로 구성하였다. 행사장도 체육관에서 벗어나 대학캠퍼스 축제 현장으로 옮겨, 94년에는 고려대 노천극장, 95년에는 이화여대 캠퍼스 그리고 올해에는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리게 된다. 3년째 대학가의 건강성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항상 새로운 문화로 넘쳐나야할 대학가에 트로트의 깃발이 나부낀 적이 있었다. 올해 초, KBS가요무대와 MBC 트로트 청백전을 통해 트로트의 중흥을 시도하다가, 심지어는 SBS 캠퍼스 트로트 가요제와 MBC 대학트로트 가요제를 통해 대학가마저 트로트로 장악해 버린 것이다.
  그 중 5월 13일 방영된 KBS 가요무대는 연세대 건학 111주년을 기념하여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진행되었다. 트로트는 우리나라의 전통가요가 아니라 일본의 엔카가 우리나라에 전해져서 불려진 곡이다. 그리고 음악학자들은 트로트가 현대적 감수성을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식이라고 했고, 음악 미학적 발전이 원천적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평도 있다. 일본에서도 시장 점유율 5%밖에 안되는 트로트가 그것도 5월에, 한때 ‘오월의 노래’가 울려퍼졌던 그 자리에서 대학생들이 소리높여 부른 것이다.
  대학은 퇴색할 수 없는 시대정신과 실험정신이 살아있어야 한다. 특히 대학문화의 위기론이 나오는때에 대학가에서 울려퍼지는 노래의 의미는 더욱 각별한다. 또한 대학생들의 순수와 열정에 찬 투쟁이 있었던 연세대에서 열리는 이번 대학가요제가 정말 대학의 시대정신과 실험정신을 되살리는 대학축제의 장으로 발돋움하기를 기대한다.

박윤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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