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적 독립영화로 이행 필요

  독립영화 제작단체 ‘푸른영상’의 대표가 검열시비로 구속됐던 사건이 있은 후, 검열철폐를 위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정세하에서 부산 국제영화제 부대 행사의 하나로 와이드앵글 이라는 제목하에 한국 독립영화에 대한 심포지엄이 있었다. 15일 오후 6시부터 1시간 40분동안 진행된 이번 심포지엄에는 사회 변영주 감독, 발제 서울영상집단 대표 홍효숙씨와 독립영화협의회 회원 남희섭씨가 맡았고, 노동자 뉴스 제작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명준씨가 참석하여 함께 토론을 했다.
  홍효숙씨는 발제에서 한국 독립영화의 역사를 세 시기로 나누어 설명했다. 제 1시기는 1982년부터 86년까지이다. 이 시기에는 여러 대학의 젊은 영화인들이 ‘서울영화집단’을 결성하여 대학내에서 시작된 영화운동의 흐름을 사회로까지 이었다는 점에서 한국독립영화사의 출발점으로 기록되고 있다. 제 2시기에는 서울영상집단(서울영화집단이 86년에 이름을 바꿈)과 대학영화연합 출신이 조직한 독립영화 제작단체 ‘장산곶매’가 ‘파업 전야’라는 민주노조의 결성과정을 담은 장편 극영화를 제작했다. 당연히 ‘파업전야’는 상영불가 판정을 받았으며, 장산곶매를 비롯한 독립영화진영은 전국적인 동시상영투쟁을 벌여나갔다. ‘파업전야’ 상영투쟁은 산재해 있는 독립영화 집단들과 지역 문화 단체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제 3시기는 1992년부터 현재까지이다. 세계화와 민주화의 구호속에서 이제 독립영화진영은 여타 운동진영과 마찬가지로 변화된 정세에 맞는 새로운 활동방식과 내용성을 모색하는 단계에 와있다고 할 수 있다.
  두번째 발제에서 남현섭씨는 독립영화의 개념과 지향점에 대하여 설명했다. 독립영화는 상업적인 제도권 영화와는 다르게 자본으로부터의 독립과 창작 표현의 자유를 가능케 하는 영화이다.
  최초의 영화운동의 선언적 의미에서 86년 민중영화론으로 재출범한 ‘서울영상집단’은, 영화운동의 집합적 의미에서 제작과 교육, 보급사업을 동시에 전개하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공안정국과 맞물려 영화운동의 첫번째의 탄압사례로 거론되는 ‘파랑새 사건’(서울영상집단이 1986년 제작한 극영화 ‘파랑새’를 이적성 영화로 간주해 서울영상집단 단원들을 구속시킴)에 의하여 영화운동의 한 세대가 마감하게 된다.
  87년 6월 민주화 항쟁과 7,8,9월의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지는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정치, 사회적 변화는 조악하지만 능동적인 홈비디오 영상매체를 통해 기록영화의 양식을 다양하게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받게 된다. 그러나 비디오 기록영화의 간편성과 개인성에서 얻은 긍정적인 경험의 한계는 아울러 전체적인 영화운동의 체계화와 조직적인 결합의 필요성을 공감하게 된다.
  김명준씨의 참가하에 토론이 시작되었다. 토론에는 이 시점에서 독립영화인들이 고민해야할 지점이 거론되었다.
  검열의 문제와 독립영화활동의 구체적 제시의 주제가 나왔다. 이에 대해 검열철폐는 당연한 것이며 싸우기 위해서는 제도적 모순에 대한 새로운 장치 및 입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독립영화를 통해 조직화 사업이 어느정도 이루어졌는가 자문도 했고, 검열철폐를 위해 싸우며 어느정도 자신들의 내용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독립영화활동이 사회운동과 결합했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라는 대답이 나왔다. 검열에 대한 시비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검열을 철폐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시책은 먼저 독립영화의 개념확인과 대중성 확보 및 계속적인 토론이 있어야 한다.

유택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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