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가 가득한 ‘꾼’들의 모임

  공연을 이틀 앞두어설까? 처음 들어선 극회 시나브로에는 각자 맡은 배역을 연습하느라 약간의 어수선함과 활기, 긴장이 있었다.
  작은 소극장 겸 연습실 벽위쪽에 지금까지 공연한 작품의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극회 시나브로는 72년 5월 20일 창단되어 올해 스물다섯살이다. 순수연극을 공연하고 관객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중부권 문화에 이바지 하자는 의도로 창단됐다.
  그 전에는 문리대 연극동아리로 존재하다가 72년 학도호국단에 전체동아리로서 등록했다. 그 후 74년 창단공연을 시작으로 현재 71회 공연까지 왔다.
  1년에 3번의 정기공연과 워크샵 공연을 한다. 그외 수시로 단막극을 하기도 한다. 시나브로에 들어오면 1학년때는 전통극 공연을 대비해 풍물, 탈춤, 민요를 기본적으로 익힌다. “우리는 ‘시나브로인’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만큼 우리들만의 자부심과 자존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나브로에는 훈이 하나 있습니다. 노예처럼 일하고, 신처럼 창조하며, 왕처럼 군림하라입니다. 우리는 훈에 맞춰 살려고 노력합니다”라며 이 동아리 회장인 전성진(건축공ㆍ2)군이 말한다.
  또한 그들은 ‘개같은 정’이란 표현을 즐겨쓴다. 작품을 무대에 올리려면 약 두달정도 준비해야 한다. 수업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같이 보내다보니 알것 모를것 다 알게 된다고 한다. ‘노에처럼 일하고 신처럼 창조한다’는 것이 좀 힘드랴.
  매일 봐서 지겹기도 하지만 함께 땀을 흘리며 고생하는 와중에 뗄래야 뗄 수 없는 정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같은 정’이라 한다. 보통 동아리들은 1,2학년을 마치면 동아리활동을 거의 안하는데 시나브로에는 공연에 참가하는 사람의 반 이상이 3,4학년이거나 예비역선배들이다. 아마 이것도 시나브로에서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끈끈한 정, ‘개같은 정’때문이리라.
  시간이 되자 그들은 즉시 모레 있을 공연 연습을 했다. 내일은 한밭도서관에 배경과 소품을 옮겨야 하기 때문에 오늘이 사실상 마지막 연습이다.
  연출의 “자, 시작하자”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긴장이 맴돈다. 연극이 시작되는 순간, 웃고 떠들던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사라진다. 단지 극중인물만이 존재할 뿐. 주연뿐 아니라 작은 배역을 맡은 사람도 자신의 역할에 빈틈이 없다. 잠시 배우가 실수를 했다. 청소부가 나와야 하는데 안 나온 것이다. 연출의 날카로운 호령. 그러나 경직된 분위기를 “한번만 더 틀리면 때릴껴”란 말로 부드럽게 푼다. 연극이 내내 진행되는 순간 연출의 눈길은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조명, 음향, 배우들의 움직임 하나하나 치밀하게 살펴본다.
  연극이 중반부로 넘어가고 어느새 배우들의 이마와 등에는 땀이 흐른다. 연극에서 눈길을 땔 수가 없다.
  대학연극의 수준이 이렇게 높을 줄이야. 단지 동아리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그들은 프로였다.
  연극이 끝나자 그들은 맡은 배역속에서 깨어나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다.
  이번 작품은 전국대학생연극제에 출품할 작품으로 시나브로출신인 83학번 선배의 창작극이다. 시나브로는 그동안 2회 대학연극 축전부터 지금 19회 전국 대학생 연극경연대회까지 매년 참가해 우수상 및 다수의 은상과 동상을 수상했다.
  “여러 사람들앞에서 연극을 함으로써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돼요.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던 잠재력을 발견하게 되죠”라고 안성민(언어ㆍ1)양은 시나브로에 들어온 보람을 말한다.
  그들에겐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지난 봄공연 ‘춘풍의 처’ 공연때 서방역을 맡았던 추연창(정외ㆍ1)군이 나와 춤을 추다가 다시 시체상태로 돌아가야 하는데 갑자기 무대뒤로 나와 버린 거였다. 다행히 상대역이었던 3학년 선배의 재치로 잘 넘어갔지만 십년감수하는 줄 알았다. 나중에 그의 말이 가관이었다. 막 춤을 추고 있는데 관객중에 번쩍번쩍하는 대머리가 보이더랜다. 알고 보니 자기의 아버지가 앉아 있어서 너무 놀란 나머지 그냥 무대뒤로 나와 버린 것이다.
  다시는 있어서는 안될, 잊지 못할 추억이다.
  졸업후 연극계로 나가는 사람도 많이 있다. 대전지역에 있는 극단 ‘시나브로’는 이 동아리 출신 선배로 이루어져 있다. 78학번이었던 남명렬씨는 ‘불의 가면’으로 서울연극제에서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인형극단을 가지고 계신 선배도 있다. 졸업후 사회에 나가서도 ‘시나브로인’으로서  당당하게 잘 살고 계신다.
  “시나브로란 점차로, 차차라는 뜻입니다. ‘촛불이 시나브로 사그러진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점차 사그러지는 촛불을 애절하고 끈질기게 지켜내듯이 연극을 지켜내자는 뜻으로 극회 이름을 지었습니다.”
  문화의 불모지, 특히 연극계가 황폐한 대전안에서 사그러지는 촛불을 지키듯이 연극을 지켜내는 극회 시나브로가 되길 기대한다.

박윤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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