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家

                                                                      이성환(농업경제ㆍ3, 시목문학회 회원)

 새로 단장히 지은 고향집
 그 자리에 있던 나의 생가는
 흑백사진처럼 명암 교차하듯
 이제는 희미해져 가는 기억속에 집을 짓는다

 매년 봄이면
 햇살 먼저 들어오도록 문지방도 낮추시며
 겨울 내내 침잠된 생활로
 위태하게 들썩이던 방구들 걷어내고
 쌓인 재와 그을음 말끔히 치우셨다
 가래 끓던 기관지염을 오래도록 앓으시던 아버지
 없는 살림에도 허한 뱃속
 따스하게 채워주시기 위해 군불 지피시던 아궁이
 쿨럭이며 타오르던 불길 속으로
 아버지는 한 해 두 해
 
 장작같은 세월을 던져 넣으시며 살아오셨다
 그렇게 식지않던 방으로
 꽃향기 스며드는 한 낮이면
 얇은 이불 홑청을 바꾸시는 어머니
 무뎌진 바늘 촘촘히 지나간 실밥을 누르다 말고
 개울물 쪼르르 노래하는 봄의 교향악 따라
 징검다리 껑충 뛰며 돌아오던 형의 늦은 하교길에
 저만치 나가 기다리던 버들피리
 해지도록 불다보면 부르튼 입술처럼
 봄을 나고야 말았던 유년의 열병이
 지루하게 내리는 장마비에도 식지않아.
 지붕에서 천장으로 떨어지던 빗물
 헤메이는 꿈결에도 들리던 그 소리 듣다 깨어보면
 천장과 몸 여기저기서 번지던 반점 무늬들
 나보다 더 아파하셨던 어머니의 슬픔에서도
 벽지 떨어져 나풀거리던 벽 사이에서도
 한없이 번식했던 어둠의 병균들
 
 새벽 까지도 행복을 갉아대던 쥐들이
 금빛 출렁이는 들녘으로 빠져나가 조용해진 집
 뜰청에 앉아 번진 버짐을 탈곡하듯 털어내며
 곡간에 쌓여가는 양식자루들
 변해가는 음계로 헤아리던 희망의 높이
 그 풍성한 계절에 나를 낳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가을은 언제나 기다려지던 음악시간과도 같았다
 가정방문을 하던 목소리 고운 여선생님의
 얼굴처럼 뽀얀 눈이 머릿결처럼 펼쳐져 내리는
 마을 앞 나의 집에는
 누구라도 다리를 건너지 않고
 마음 먼저 가지런히
 가식 벗고 들어와도 좋다.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