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부터 시작된 무장간첩사건이 장기화 되고 있다. 무장간첩 26명이 내려온지 한달이 다되어가고 있는 지금, 그들이 지니고 온 무기의 수천배의 위력으로 우리사회는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중이다. 수만명의 군인들이 실전을 방불케하는 소탕작전에 투입되었고, 사건지역의 주민들은 야간통행금지, 입산금지등의 생활의 불편을 겪고 있는 중이다. 언론사는 이러한 내용들을 연일 크게 보도하면서 반공의식 고취에 앞장서고 있으며 국민들은 북한의 ‘보복조치’공언에 불안에 떨고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실에 대한 약간의 의구심이나 정부발표에 대한 빈정거림, 무장간첩의 주검에 보내는 동정 따위는 절대 용납되지 않고 있다. 실례로 상지대와 동국대 신문사의 기자와 편집국장이 구속되어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그들이 정말로 무장간첩 옹호론을 펼치고 북한의 주장을 여과없이 이야기 했다면 속된 말로 ‘간이 부었음’에 틀림없다.
  어찌되었든 사건이 한달을 넘어서면서까지 장기화되자 사람들은 격앙되고 혼란스러웠던 감정을 다소 진정시키고 이성적으로 정리하려 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그동안의 사건보도 중심에서 조심스럽게 분석적 보도로 옮아가고 있다. 이제는 이성적으로 무언가 생각하고 정리해야할 시기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 방향에 있어 사건에 대한 배경이나 북측의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는 아직도 무어라 이야기 하기에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길 조차 없어 막막하기만 하다. 그러나 무장간첩 사건이 우리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는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이야기 할 수 있고 해야만 할 것이다.
  일단 득보다는 실이 많았다는 판단이다. 그동안 더디게 이어왔던 남북화해의 실타래가 이젠 더욱 엉켜버리고 말았다. 남북경제협력 문제가 재고되었고 4자회담에 걸었던 기대마저 수포로 돌아갈 위기이다. 또한 북한 쌀지원 문제마저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이런 문제는 가깝게는 북측의 타격으로 귀결되겠지만 궁극적으로 통일의 그날이 멀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국민들의 고취된 반공의식, 정치권의 통일된 대북 강경론, 강화된 안기부법. 이런것이 우리가 얻은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무장간첩 사건의 산물이 득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모 시사잡지의 편집장이 “통일의 시계가 뒷걸음질 치더라도, ‘무장간첩’ 정국 속에서 누군가는 축배를 들 것이다”라고 밝힌것처럼 축배를 들 그 누군가에게는 오로지 득이되는 그런 사건이었을 것이다.
  한총련의 연세대 통일투쟁과 무장간첩사건을 이어오면서 우리사회가 지나치게 경직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노동자, 농민, 학생등 그동안 진보적인 위치에 있던 사람들은 볼때 더더욱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정부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보면 예전보다 훨씬 위태롭게 느껴지는 것이 한두사람만의 기우는 아닐것이다. 그동안 통상적으로 인정되었던 사회내의 비판풍토마저 사라지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침묵의 시대’가 도래하여 그동안 쌓아온 민주화의 산물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는 것이다.
  ‘침묵의 시대’를 깰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말함’에 있다. 과거 군사정권시절의 암울함을 이겨온 근원적 힘은 ‘말함’에 있었을 것이다. 표현을 해야 공유가 되고 공유가 되어야 힘을 가질 수 있다. 침묵은 그 무엇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누군가 ‘침묵의 시대’를 멋지게 불러왔듯이 우리역시 할말은 하면서 ‘침묵의 시대’를 멋지게 깨나가야만 할 것이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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