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발이 닿은 이곳에서 구원을 받고 싶다

 하나.
  밤새 핏대 세워가며 술을 마신 다음날의 오후세상은 취해있을 때보다 훨씬 몽롱하다. 넘쳐 주체할 수 없었던 취기와 객기는 증발한채 옹송그려 누워있는, 무기력에 찌든 육체와 지끈거리는 편두통과 눈앞엔 온통 무채색의 낯선 풍경들.
  잿빛 하늘, 잿빛 개천, 어딘가를 향해 일렬종대로 늘어서 있는 고층 아파트. 마치 그곳에 구원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학교마다 대형간판은 ‘신한국인’을 아우성치고 썬팅된 버스 차창 안에서의 이 우울한 소외감. 버스를 내리면 취업전선의 육중한 대리석 정문이 입을 벌린채 내려다 보고 있다. ‘늦었군, 쯧쯧 너에겐 막차도 없겠다’ 조롱하는 듯이
 둘.
  ‘페스티벌’
  제법 깔끔한 프래카드가 내걸리면 으례 따르는 접미사. 중고등학교 졸업식에선 가끔 울음바다가 되기도 하지만 이제 그런 코메디는 필요없다. 잔치를 벌인다. 이곳을 먼저 빠져나가는 이들의 앞날을 위해…. 또 눈에 띈다. ‘신**당 박** 고문 초청강연회’. 재미 있겠군. 아마 모르긴 해도 그는 희망찬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두주먹을 불끈 쥘거야. 그에게 있어 미래는 과거와 현재가 별로 중요하지 않을 테니까. 한쪽엔 구속자 명단과 검찰의 구형량을 알리는 대자보가 초라하다. 6년, 5년, 3년…. 한번의 ‘불법’집회 참석에 짊어져야할 스물세명 충대인의 초상.
  청와대의 인터넷 홈페이지 초기 화면은 ‘문민 대통령 김**’. 이젠 듣기조차 역겨운 ‘문민시대’에 ‘세계화’ 경찰은 연대를 고립시키고 이천여명의 학생들을 끌고 갔고 검찰은 차례차례 감옥에 채워 넣었고 또 법원은 순순히 검사손을 들어줬다. 실로 그들의 여름은 위대했다. 언론은 또 어떠했는가? ‘마녀’는 또 있다. 일년에 수조원을 훨씬 넘게 쓴다는 대한민국 국방부의 집중포위, 수색을 비웃으며 50일 넘게 끄떡없는 ‘세마녀’. 그들은 언제 잡힐까? 내년 대선 전에는 잡아야 할텐데…. 그 마녀를 못잡아 장관에서 쫓겨난 사람이 대통령 딸에게 이력서를 바쳐서라도 진급하고 싶어 안달할때 가을도 없는 전방 철책에 몇십만 젊은 청춘은 겹겹이 껴입은 군납물자에도 몸이 언다.
 셋.
  ‘포스트 모던’
  외국에서 공부좀 했다는 철학 선생님들이 니체, 푸코, 데리다 등을 열심히 거론하며 설명하는 ‘텍스트’다. 이제 합리적 이성에 근거한 근대는 사라지고 있다고…. 정말 그런가? 성개방, 동성애, 성정치…. 성담론은 난무하는데 공권력은 과다노출 단속에 열을 올리고 여고생은 교실에서, 분식집에서, 목욕탕에서 아버지도 없는 애를 쑥쑥 낳는다. 정부는 OECD에 어떻게든 가입해 부자나라 소리를 듣는게 소원인데 철거반원의 몽둥이에 맨몸으로 막아보겠다고 나서는 주민들은 ‘생계보장’이 소원이다. 헌법재판소는 공륜의 가위질이 위헌이라고 판결했지만 같은날 같은장소에서 국가보안법의 합헌결정을 내렸다. 공연한 ‘젖소’바람만 키워놓은 셈이다. 건설회사는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외국빌딩을 우리 손─기술이 아니라 손(!)─으로 짓는다는데 10년도 안된 6층 백화점은 폭삭 무너졌고 무더기로 지은 신도시 아파트엔 쩍쩍 금만 잘도 간다.
  마이클은 기어이 한국에서 ‘Heal the world’를 부르고야 말았지만 아프리카 백만 후투족은 굶어죽다 못해 맞아죽을 인종청소의 위기에 놓여 있다. ‘남’은 음식찌꺼기가 전체 쓰레기의 절반이라 골치아파 죽을 지경인데 ‘북’은 몇년 홍수에 배가고파 죽고있다.
  또있다. 얼마든지 재벌언론과 언론재벌의 치졸한 주도권 다툼은 관두고라도 학력차별은 없앨테니까 가급적이면 지방대엔 차라리 가지를 말라는 대기업의 준엄한 무논리가 있다. 이것이 포스트 모던, 비이성의 시대에 읽어야 할 신문의 행간이다. 그런데도 이제 ‘탈근대’를 논하자니. 도대체 우리가 언제 ‘합리적 이성에 바탕한 근대’를 이룩하였었는가? 나는 ‘근대’가 소원이다. 이성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살고 싶다.
 넷.
  학생들은 정말 열심히 공부한다. ‘상아탑’의 도서관엔 빈자리가 없다. 부지런히 공부하고 때론 컨닝도 하고 가끔 새치기도 하면서 열심히들 산다. 죄의식을 느껴선 안된다. 느끼면 그는 바보다. 왜? 전략은 취업. 전술은 더 높은 연봉의 직장이니까. 얼굴이 안되면 성형수술도 마다해선 안된다. 기성세대여 와서 보라. ‘우리들의 천국’에서 ‘내일은 사랑’을 꿈꾸며 대학문을 들어섰을 철부지 새내기가 ‘취업전선’의 전사로 어떻게 단련되는지를…. 가을비가 내린다. 누군가 노래한 그 시월의 마지막 밤이 지난다. 낙엽은 누리지도 못했는데 벌써 나무는 뼈대를 드러냈다. 몇년 전 교정에서 쉽게 듣던 ‘정치성’ 구호는 경쾌한 찬양소리와 ‘구원을 받으라’는 애절한 호소에 밀려 있는 듯하다. 구원이 있다면 나도 받고 싶다. 단지 저 하늘나라에서 보다는 여기, 내 두발이 닿아 있는 이 땅에서.

김선주(건축공ㆍ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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