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깊은 절망에서 피어나는 함성

  제1학생회관 3층을 지나갈 때 드럼소리와 함께 ‘함성’이 들리는 곳이 있다. 그러나 노래 소리와는 달리 알고보면 매우 과묵하고 따뜻한 회원들이 있는 곳, 바로 노래패 ‘함성’이다. 노래패답게 드럼과 신디사이저, 기타가 있고 악보와 음악테이프 수십장이 책상에 꽂혀 있었다. 벽에 붙어있는 시와 정기공연 포스터, 그리고 한쪽에 있는 이불이 더욱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우리나라의 민주화에 커다란 획을 그었던 87년, 끊임없는 집회ㆍ시위의 과정에서 민중가요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 해 4월, 6월을 거치면서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 운동을 하는 학우 중심으로 88년 3월 정식으로 ‘함성’이 결성됐다. 그 후 매년 봄 대동제와 가을에 정기공연을 하고 단과대 문화제나 한국통신 노조 등에서 초청공연을 하기도 한다.
  함성은 노래팀, 반주팀으로 일괄적으로 나눠져 교육을 받지 않고, 처음에 여러가지 악기를 접하고 차츰 자신의 적성에 맞는 악기를 찾아 담당 선배에게 1대1로 전수를 받게 된다. 또한 방학 때 4박 5일이나 6박7일정도로 ‘전수’를 위한 모꼬지를 간다. ‘놀기’위한 것이 아니라 교육을 1차적인 목적으로 한다.
  지난 학기까지만해도 함성은 ‘금녀의 집’이었다. 이상하게 여학생이 한명도 들어오지 않아 아무도 원하지 않는 ‘금녀의 집’이 되었다. 다행히 2학기들어 여자회원들이 들어와 ‘금녀의 집’을 면하게 됐다.
  함성은 다른 동아리와 달리 1년내내 회원을 받는다. 함성의 회장 박준희(영문ㆍ3)군은 “자신의 의지와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만 있으면 예비역이든 대학원생이든 상관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악기를 다룰 줄 모르거나 노래를 못 불러도 상관없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의지를 가지고 함성의 문을 두드리면 언제라도 환영받을 것이다.
  지금 함성은 12월 초에 있는 정기공연을 맞아 정기공연 준비체계로 들어갔다. 공연이 잡혔을 때 규칙적인 모임을 갖는다. 그런데 학내에 공연할 만한 공간이 없는 것이 가장 어려운 점이다. 학내에 공연을 할 만한 장소라곤 문원강당과 취봉홀 밖에 없는데 그 곳을 빌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나마 행사가 가능한 학생회관 휴게실도 실내공연을 할 장소로는 적당치 않다. 그래서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문 앞 21세기 소극장 같은 곳을 빌려서 한다. 임대료도 문제지만 학외에서 하면 관객들이 훨씬 줄어들수 밖에 없다.
  함성은 대중활동을 전제로 한다. “공연을 했을 때 학생들의 관심이 저조하고 호응이 부족한 점이 가장 아쉽다”라고 이번 정기공연 주체를 맡은 성정일(통계ㆍ2)군은 말한다. 공연 때 학우들의 관심이 저조한 현상을 보며 이젠 자체내에서 활동 방식에 변화가 있어야겠다고 고민한다.
  예전과는 달리 민중가요에 대한 편견과 막연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학생들을 보며 어떻게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것이 함성의 가장 큰 고민이다. 이것은 비단 함성만의 고민이 아니라 이 시대에 노래운동을 하는 많은 노래패들이 함께 풀어야 할 숙제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사회전반적으로 민중가요 뿐만 아니라 대중가요에서도 사회비판적이고 저항적인 가사를 많이 실고, 그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올해 6월 음반에 관한 사전심의철폐 등 이런 현상을 보며 작은 힘이나마 전체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와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말하는 박준희군의 모습에 앞으로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이번 공연 주제는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에 대한 희망의 복원’이다. 먼저 가장 깊이 절망하고 그 절망을 딛고 일어나 사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천지인의 ‘청계천 8가’는 이런 함성의 주제를 가장 잘 담은 곡이라고 할 수 있다.
  “노래패 함성은 노래가 중심이 아니라 무엇보다 인간입니다. 인간에 대한 애정 자체가 드러나도록 늘 애를 쓰고 있습니다. 함성을 유지해 나가는 힘은 사상적, 노래적 열망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하는 모습에서 정말로 대중문화의 과잉시대에 대학안에서 대항의 노래를 부르며 대안의 노래를 찾는 노래패 함성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박윤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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