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자유'위한 수용자 문화운동 필요

  작년 12월, ‘공연 윤리 위원회’의 음반에 관한 사전 심의가 결국 폐지되었다. 그것은 한국 대중 음악사뿐만 아니라 진보 운동사에도 커다란 획을 긋는 사건이었었다. 이제 누구도 음악을 검열하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새 음반법이 발효되던 올해 6월, 주류와 비주류를 망라한 진보음악권 전체가 ‘자유’라는 이름의 공연을 올리고 축배를 들었다.
  그 후로 몇 개월이 흘렀고, 심의가 존재했었다면 상상도 못할 내용의 노래들이 발표되기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노래 운동 진영에서는 별다른 음반이 발매되지 않고 있고, 심의 철폐 이후 노래운동의 새로운 모색과 발전을 기대하던 사람들을 의아스럽게 하고 있다. 그들은 무얼하고 있는 것일까? 짧게 말하자면, 노래운동 진영의 음악단체들은 새로이 자신들의 ‘무기’를 가다듬고 ‘합법시대’를 정면 돌파하기 위한 준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꽃다지’는 얼마 전 신곡 발표회를 가졌으며, ‘천지인’은 멤버를 새로 정렬하여 전혀 새롭고 보다 강렬한 모습의 음반을 마무리 작업중에 있다. 그러나 그들이 과연 대중음악시장에서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거기에는 그야말로 ‘음악 외적인’ 많은 이유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음반 산업에 대한 직, 간접적인 규제와 영향력 행사는 당연히 아직 존속하고 있으며, 법적 근거가 필요없는 ‘방송사 자체 심의’라는 벽은 아직 두텁게 남아있다. 매스컴의 영향을 음악성 자체보다 훨씬 크게 받는 속성을 지닌 음반 산업의 특성상, 스포트라이트가 비치지 않는 구석 자리로 밀려나 있는 대중음악의 빈곤들은 엄청난 악조건 하에서 대중음악 시장에 뛰어든 셈이다. 하지만 그들은 섣부르게 자신들의 사상을 유화시켜 대중성을 획득하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진보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리고 당당하게 합법적으로 발매한 음반을 통해 전보다 훨씬 다양하고 많은 대중들에게 평가를 받으려 하고 있다. 거기에서 노래 운동은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당연한 과정이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이렇게 의심해보는 것은 단순히 노파심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10월 초, 노래운동 진영의 한 음악 그룹이 음반을 발매했다. 그들은 서울의 대학가와 노동 운동권을 대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해왔으며, ‘천지인’과 함께 다음 세대의 노래운동을 이끌어 나갈 주축으로 꼽히는 그룹이었으며, 합법시대를 맞아 색깔이 뚜렷하지 못한 ‘작은 하늘’이라는 팀의 이름을 ‘메이데이’로 바꾸고 새로이 전열을 가다듬고 있는 그룹이다. 그러나 현대 음향을 통해 발매된 그들의 음반은 발매된 지 한달이 넘도록 쉽게 구할 수가 없다.
  사정은 이렇다. 음반을 발표한 그들은 음반 도매상을 통하여 음반을 유통시키려고 했으나, 도매상측은 시장성이 없다는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서 음반을 창고에 쌓아 두고만 있다. 한국의 음반 유통 시장은 ‘도매상 협회’에 의해서 장악당하고 있으며, 그들은 음반 제작사들에게 압력을 가해지면서 창작사, 음반사, 매스컴과 함께 실질적으로 대중음악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제4의 세력이다. 하루에도 20여장씩 쏟아져 나오는 음반 중 4분의 3이상이 ‘유통 마진도 안 빠진다’는 도매상의 판단에 의해 음반점에 진열되어 보지도 못하고 사라져 버리고 만다. 서태지도 텔레비젼 신인가수 등용프로그램 덕택이 아니었다면 도매상 창고에서 1집 음반이 사장된 채 잊혀져 버렸을 지도 모른다.
  ‘메이데이’의 음반도 마찬가지 상황에 처해있다. 도매상측의 판단은 법적인 규정과 아무런 상황이 없는 문제인데다, ‘이제 막 음반을 낸 신인 그룹’인 ‘메이데이’측으로서는 그들에게 영향력이나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들의 음반은 현재 사회과학 서점을 통해서나 ‘자유 2’공연 등의 행사장에서 그야말로 보따리장사 식으로 소수 유통되고 있다. 그렇다. ‘비합법’또는 ‘불법’적으로 음반을 유통시키던 때의 방식이다.
  유통을 거부하는 그들의 판단이 단순히 ‘시장성이 없다’는 것인지 아니면 ‘민중음악’에 대한 새로운 방식의 탄압인지는 아직 섣불리 말할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합법시대에도 이런 식으로 유통 단계에서 대중과의 만남이 저지된다면, 결국 힘겹게 빼앗아 낸 예술에 있어서의 사상의 자유는 다시 억압당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술이 대중과 만나기 까지에는 거쳐야 하는 과정이 너무나 많다. 그 양끝에서, 예술 창작자와 대중 사이에는 아무런 소통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대중은 자신의 취향을 결정하는 것마저도 자유롭지 못하고 주어진 한도 내에서 선택하는 데에만 익숙해져 있다. 음악을 듣는 이의 목소리가 강해져야만 한다. 창작자들은 법정에서까지 서가며 표현의 자유를 빼앗아 냈다. 그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역시 자신의 들을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한다. 그러지 않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음악들을 빼앗겨 왔었다. 어쩌면 ‘천지인’의 새 음반도, ‘꽃다지’의 다음 합법음반도 우리 손에 들어오지 못하고 말지 모른다. 그리고 다른 이름없는 수많은 명반들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소비자 운동’으로 불리든 ‘수용자 문화운동’으로 불리든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박차고 일어나 음반점으로 가서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내가 듣고 싶은 음반들을 가져다 놓으라고.

박준희(영문ㆍ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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