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한 세친구를 위한 냉정한 위로

  임순례 감독의 첫번째 장편영화 ‘세 친구’는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가슴 아프고 그래서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영화다. 70년대 ‘고교 얄개’시리즈부터 빗나가기 시작한 한국의 청소년 영화는, 80년대에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와 같은 대책없는 철부지 상업영화로 이어졌다. 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나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반을 찾습니다’와 같은 영화는 입시제도의 폭압적 구조에 접근하긴 했지만, 그 영화들이 사용한 ‘감성’이라는 방법론은 우리의 현실을 통찰력있게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세 친구’는 한방울의 눈물도 허락하지 않는 건조함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리고 교실이라는 아기자기한(?) 공간을 떠나서, 세명의 남자아이들이 졸업 후에 겪는 고통의 현실을 일기를 써나가듯이 그리고 있다.
  섬세의 집은 미용실이고 그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이다. 그는 입시학원에 다닌다고 거짓말을 하고 미용학원에 다니고 있다. 삼겹의 집은 음식점이다. 1백kg이 넘는 그에게 뚜렷한 목표는 없고 지금은 비디오 가게 점원이다. 무소속은 어머니가 없다. 대신 바둑에만 몰두하는 아버지와, 만화가의 꿈이 있다. 이들에게 현실은 만만한 것이 아니다. 고등학교 3년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남겨준 것이 없었고, 냉정한 사회는 대학을 가지 않은 그들을 ‘착취의 대상’으로 밖에는 보지 않는다. 우리의 생산적인 사회는 그들을 부적응 상태를 ‘무위도식’으로 간주하고 ‘군대’라는 도피처를 제공한다. 하지만 삼겹은 체중초과로, 섬세는 정신적인 문제로 그 도피처로도 가지 못한다. 그리고 무소속만이 군대라는 소속을 얻었지만 결국은 의가사 제대를 하고만다(무소속은 고등학교 때 교사에게 당한 폭력으로 인해 고막에 상처를 입었고, 군대에서 고참에게 맞아서 청각을 상실한다).
  ‘세 친구’는 졸업식장에서 시작하는 ‘탈학교’의 모습을 보여주며,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가는 어린 영혼들에게 누가 상처를 주고 있는지 묻고 있다. 즉 흔히 말하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감독이 그리는 우리 사회의 문제는 신문이나 잡지에 피상적으로 분석되는 사회학 리포트가 아니라, 리얼리즘에 입각한 바로 나와 우리의 문제이다. 이 영화가 단순한 묘사나 반영에 그쳤다면 본질은 놓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독은 그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그리고 영상화시키고) 있으며, 그것은 바로 ‘폭력’이다. 우리의 세 친구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폭력의 희생자가 된다. 섬세는 가부장적 제도와 남성성에 대한 압박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다. 그는 남자다와지려고 노력하지만, 흑백논리가 가득차 있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그에게 단지 폭력일 뿐이다(그는 폭력적 남성성에 의한 공포로 정신적 상처를 입는다). 또 삼겹의 육체는 사회적 규준에 의해 비정상으로 판정받는다. 그의 육체는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는 트집의 대상일 뿐이고, 그가 안주하는 곳은 비디오 가게뿐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가장 큰 희생자는 무소속이며, 그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사회구조이다. 만화가가 되려는 그의 꿈은 여지없이 농락당하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가 겪는 폭력의 정체는 억압적 커뮤니케이션에 의한 일방통행의 권력이 낳은 것이며, 결국 그는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가 되어 걸인처럼 시장바닥을 떠돈다(그는 친구들의 소리마저 듣지 못한다).
  80년대초 ‘바람불어 좋은 날’에서, 산업화된 도시에 적응하지 못한 세 젊은이들의 삶이 그나마 희망적인 결말로 끝을 맺었다면(이 영화에서의 ‘군대’는 새로운 내일을 위한 하나의 통과지점이다), ‘세 친구’가 그리는 90년대의 중간은 감히 희망을 말할 수 없는 삭막한 거리이다. 감독은 변두리의 황폐한 풍경을 우리의 정서에 대한 상징처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거리 속의 모든 사람은 폭력을 안고 살며, 그 거리를 나서면 더 큰 폭력이 기다리고 있다. 어떠한 연애담도 없이 젊은이의 현실을 정확히 그린 영화, 바로 ‘세 친구’이다.
  서정주는 자신을 키운 것은 ‘팔할이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를 키운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김형석<문화학교 서울ㆍ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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