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 만에 재입학 한 최미숙씨의 사연

 왼쪽을 보아도 오른쪽을 보아도 온 세상을 노란 물감으로 물들여 놓은 듯 봄을 알리는 개나리들이 만발하다.
 하지만 20년 전인 80년대 우리학교의 봄은 억압받는 학업과 동아리 활동의 규제, 학교 내의 사복경찰 배치 등 요즘의 캠퍼스 같은 분위기는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민주화를 위해 정부에 맞서 앞장 서 나갔던 그 당시의 대학생, 8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제적 당한 뒤 이루지 못했던 학업을 위해 20년 만에 다시금 새 학기를 맞는 최미숙(중문·2)씨를 만나보았다.
 


 다시 얻은 기회 재입학 그리고 시작

 “82년 입학 후 1년 뒤 제적을 당하면서 이후에 기회가 있으면 재입학을 하고 싶었다”고 한 때의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최미숙씨. 현재 고3 딸의 어머니이자 직장인이기도 한 최씨는 원래 2월에 우리학교 명예졸업장을 받기로 되어 있었지만 스스로에게 의미 없는 졸업장이 될 것 같아 받지 않으려 했다.
 그러던 중 마침 참여시민연대에서 일하는 83학번 동기가 현 양현수 총장에게 최씨의 사정을 얘기해 1학기 분 장학금과 함께 재입학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현재 직장을 다니면서 짬을 내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온다니 젊은이들 못지않은 열정과 그에 대한 각오가 남달라 보인다.

 잊혀지지 않는 ‘유인물 배포’ 사건

 학교 제적 당시 상황을 묻자 “인문대 구름다리에서 민주화 유인물을 뿌리던 나를 향해 유리창을 깨고 달려와 허리춤을 잡아간 사복경찰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당시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경찰에 체포되었던 얘기를 꺼낸다.
 80년대 우리학교 1학생회관에는 안기부 사무실까지 안치되어 있었고 사복 차림을 한 경찰들이 학교 곳곳에 배치 되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이라면 전혀 상상조차 되지 않을 일이다. 유리창을 깨고 나왔다는 경찰을 한 번 상상해 보라. 그게 바로 20년 전이란다.
 그 일로 제적을 당한 후 85년도에 다시 학교로 돌아오긴 했으나 노동운동의 꿈을 안고 공장에 취직하면서 학업과 병행하는 생활을 펼쳐왔다. 하지만 그때까지 경찰은 갖고 있던 리스트를 빌미로 ‘위장취업’이란 죄를 씌워 최씨는 또 다시 학교에서 제적을 당하게 되었단다. “그 당시에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고 말을 더한다. 최루탄이란 단어가 거리낌 없이 들려오고 방독면을 쓴 전경과 청 자켓을 입은 백골단이 민중을 몽둥이로 후려치던 시대였다.
 “운동이란 꼬리표 때문에 취업이 많이 힘들었어, 하지만 살아가기 위해선 생활전선에 뛰어 들어야 했다”며 운동 이후 힘들었던 삶을 말한다.
 사실 DJ정부까지도 사복경찰들이 항상 동향 보고를 위해 배치되어있었다고 한다. 불과 10년 전도 아니다. 노정권 전까지 억압받고 눈치 봐야 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사회에서도 인정을 하고 그 이해의 폭도 넓어졌다. 최씨에 대한 존경심을 당당히 표해본다.

 “20년만의 복학이지만 과에서 따뜻하게 반겨주고 조교님이 많이 도와 주셔서 무리 없이 지낸다”며 최씨는 20년의 벽을 허물며 학교 적응에 열심인 듯하다. 비록 힘들고 험난한 20년을 보냈지만, 이제 시작이라고 그는 말한다.

사진 / 글 - 최준용기자 junskyx@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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