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 로미오와 줄리엣

 나날이 발전의 발전을 거듭해 가고 있는 요즘 영화에는 영상과 더불어 음악의 중요성이 더욱더 강조되어 가고 있다. 각종 음악차트에는 순수목적에 의해 제작된 작품보다는 영상의 이미지와 혼합되어 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목적의 영화 사운드 트랙이 더 많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그만큼 요즘 세대들은 영상과 음향의 동시 만족을 갈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속에서 대다수의 영화들은 적어도 한가지씩의 히트곡을 먼저 내고 내봉을 하거나 개봉을 하고나서 그 감동의 여운을 잊지못하는 관객의 열화같은 성원에 힘입어 히트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같은 부류로 보아야 할 영화인데, 여기서 한가지 더 의미를 부여할 만한 점으로 이영화는 영화 그 자체가 뮤직 비디오와 순발력과 스피드, 그리고 감각적인 영상을 모두 지녔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가 만만치 않다. 등장인물들 심지어는 그냥 지나쳐 버려도 될 인물들에게까지 자막을 띄워가며 그 존재를 소개시켜주는 오프닝을 마련한다. 마치 파티에 초대되어 갔는데 알아도 그만 몰란도 그만인 손님들을 시시콜콜이 소개해주는 친절하지만 왠지 귀찮은 주인을 만나격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사랑하는 두 연인과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는 두 집안과의 적대감. 이 정도면 이 영화는 더 이상 말할 것도 보여줄 것도 없는 단지 저 옛날 프랑코 제피넬리 감독이 만든 ‘로미오와 줄리엣’의 모방이자 그 아류작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뭔가가 달라져 있다.
 그 옛날 아름답고 서정적이기만 했던 영상은 이제 너무나 도전적이고 즉흥적인 예측불허의 영상잔치가 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1996년도판 로미오와 줄리엣은 머리가 아플 정도로 혼란스럽다.
 너무나 카메라 네크닉을 많이 구사했는지, 아니면 편집할 때 의도적인 작업을 통해서인지 어느 한장면이 고스란히 머리에 각인될 여유도 주지않고 아주 빠르게 진행된다. 빠른 음악적 진행과 함께 관객의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이도록 하면서 순발력과 스피드를 즐기는영상의 모습은 앞서도 언급했듯이 짧은 순간에 모든 메시지를 표현하려는 MTV를 닮아있다. 누군가가 1996년판 바즈 루어만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이렇게 비교했다. 프랑코 제피넬리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올리비아 핫세만을 우한 영화였다면 오늘날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위한 잔치라고 말이다.
 올리비아 핫세의 그 청초한 눈망울과 흑발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는 이라면 그리 섹시하지도 그렇다고 청순해 보이지도 않는, 게다가 밋밋한 몸매의 클레어 데인즈의 모습은 아무도 내세울 것 없는 그저 그런 여배우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로미오의 케릭터는 변해있다. 레오나르도가 어느 인터뷰에서 그랬다. 만약에 이 영화에서 로미오의 캐릭터가 예전의 로미오의 그것이라면 이 영화에 출연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현대판 로미오는 복합적인 성격의 캐릭터이다. 처음에는 어딘가 모르게 약해보여 키만 컸지 한없이 감싸 보호해 주고픈 미소년 같아보이지만 베라크루즈 해변을 걸으면서 사색에 잠겨 있는 모습은 고독과 인생의 허무를 알고 있는 철학자와도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전의 로미오와 확연히 다른점은 광기와도 같은 열정을 눈빛과 온몽으로 연기한다는 점이다. 레오나르도의 연기적 매력은 바로 이점에 있다. 광기와도 같은 열정과 집념. 바로 이점 때문에 레오는 흔쾌히 출연을 결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로 이번 제47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남자배우상을 수상하지 않았는가.
 레오는 지정상적인 캐릭터에 강하다. 본인 자신의 성격이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에게 있어 건전하고 모범적인 캐릭터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보다는 어느 한부분이 삐딱하게 어긋난 흔들의자와 같이 삐거덕 거리는 인물이 레오의 연기력을 한없이 발산하게 만든다.
 이 영화의 배경은 멕시코이다.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분위기가 화면을 압도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이 공유하는 공간만큼은 소품 하나 하나가 아름답고 현란하다.
 둘의 만남의 계기가 되어준 어항을 보라. 파랗고 빨간 자그마한 물고기들의 어울림은 두 연인의 눈동자를 이끌어준 매개체가 되어주는데 로미오와 줄리엣의 파란 눈동자가 한쌍의 물고기와도 같이 투명하고 선명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화려한 장면은 서로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운명을 거부하는 그들의 모습을 가득담은 납골당 씬이다. 어떻게 보면 으시시하고 가장 칙칙한 분위기라 여겨질지 모르나 화면에 담겨진 그곳의 모습은 지상낙원의 모습이다. 화려하고 은은한 네온의 십자가는 두 연인의 숭고한 죽음을 암시하며 향기에 중독되리만치 수많은 꽃송이들은 짧으나 강렬하게 살아간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의미한다.
 바즈 루어만은 색채이미지와 음악적 조화를 가장 중요시한다. 그의 이전 작품 ‘댄싱 히어로’와 이번 작품을 보면 확연하리 만치 뚜렷하게 이 감독의 개성을 파악할 수 있다. 영화와 연극외에 호주판 보그지 편집장을 역임한 그의 경력에서 알수 있듯이 그의 감각적인 표현과 도전은 앞으로도 무궁무진하리라 여겨진다. 게다가 그의 경력에 이번 47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알프레드 바우어상을 수상한 경력이 덧붙여짐에 따라 그는 호주에서 헐리우드로 건너가 자신의 입지를 확실히한 감독으로 남을 것이다.
 요즘에는 영화 소재의 고갈로 인하여 고전작품들의 리바이벌이 붐이다. 개인적으로 그러한 분위기가 그리 반가운 편은 아니지만 옛것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이 다시금 되새겨 진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
 그러한 유행과 성향에 따라 ‘로미오와 줄리엣’이 흥행에 성공한 셈인데 우리영화에서도 코미디물이 요즘 재미를 본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그러한 작품에만 매달리지 말고 앞으로 몇십년 후에 리메이크 되어도 흥행에 성공할 정도로 완벽하고 아름다운 작품에 주력했으면 좋겠다.

이 순 옥
(고분자공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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