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이에 맞는 사회적 책임을 요구받게 된다. 대학생은 비슷한 나이의 학생 신분이 아닌 이들과 달리 학업을 요구 받는다. 사회 가정에서 학업에 필요한 학비 시간드으이 제반 사항을 지원 해 준다. 이러한 것들이 유리한 조건임에는 틀림없지만 바람직한 방향인지는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우리 나라에선 부모가 대학생들에게 용돈과 학비를 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오히려 부모가 등록금을 대지 못하면 부모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된다.
 미국의 경우 대학생들은 가정에서 도립해 경제적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한다. 학교 생활을 하며 나름대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은행이나 학교에서 학비를 융자해 공부하고 졸업해서 값아 나가는 형식이다. 물론 미국과 한국의 상황이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대학생이 아닌 경우에 20살 이상 사람들이 대부분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노동과 학업이 대등한 가치 선상에 놓여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가정에서 노동자들은 사회에서 대가를 지불 받는 점이 다르다. 이러한 차이는 가정 경제에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온다. 짧지 않은 4년의 생활 기간에 만만치 않은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가정 경제의 중심이 대학생을 중심으로 꾸려진다.
 과거엔 교육 환경이 열악하고 대학도 적었기 때문에 소위 많이 배운 대학 졸업자들이 잘 살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에서는 미래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며 자녀 교육을 시켰다. 이러한 풍토가 지금까지 내려와 대학생들이 부모로부터 생활비를 받는 것이 인정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설 때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 시작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삶의 질을 중심으로 평가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우린 1만 달러 분기선을 넘었다. 말 그대로 살만하게 됐다. 이는 대학생을 키워 내야 하는 절대적인 가치를 변했음을 의미한다. 즉 가정의 희생적인 뒷바라지는 당위성을 읽게 됐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배움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것에 우선 순위가 될 순 없다.
 우리 나라의 사회 전반적인 교육 분위기가 하루 아핌에 변할 수는 없지만 바꾸어 나가려는 노력은 대학생들 자신에서 부터 시작해 나가야한다. 이미 많은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학생들 자신도 대학교육 분위기의 문제점과 변화의 방향을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를 무한 경쟁의 시대라고 한다. 사회의 요구치를 뛰어 넘어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 발전 시키는 자만이 승리 할 수 있다.

이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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